새벽사람들을 만나다⑥ 대리운전 기사를 만나다
새벽사람들을 만나다⑥ 대리운전 기사를 만나다
  • 박윤조 기자
  • 승인 2012.05.17 22:32
  • 호수 1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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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사람들을 만나다⑥ 대리운전 기사를 만나다

그들이 밤거리를 나서는 이유

 

지난 12일 토요일 밤 11시경 인천의 한 먹자골목. 각종 술집과 모텔, 클럽의 화려한 네온사인만이 밤을 밝히고 있다. 번쩍번쩍 거리는 것이 마치 손님들을 유혹하는 듯하다. 어디선가 흥에 겨운 트로트 노랫소리도 들려온다. 어디론가 이동하는 차와 사람들은 줄어들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 이 복잡한 밤거리에서 빠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대리운전 기사들이다. 그들의 밤은 누구보다도 길고 또, 깊을 수밖에 없었다.   <편집자 주>

‘띵동’ 콜 소리만을
애타게 기다린다
수도권에서만
대리기사 약 7만명

“대리, 얼마에요?”
술을 먹고 귀가하려는 한 손님이 대리운전 플랜카드가 걸린 천막에 와서 묻는다. “어디 가시는데요?” 대기 중이던 대리운전 기사들이 일제히 그 손님을 쳐다본다. “일산 증산마을이요.” 여기서 조금은 외진 곳이다. 다행히 한 대리운전 기사가 가려는 눈치다. 그는 손님과 함께 자리를 떴다. ‘바운드’라 불리는 이 천막에서는 손님을 오프라인으로 바로 접수받아 대리운전 기사를 배정 해주고 수수료를 받는다. 대리운전 기사들의 대기공간인 동시에 휴식공간인 셈이다.
인천 서구청 근처에는 이런 대리운전 업체가 자리 잡고 있다. 천막 바로 뒤에 위치한 벤치에는 대리운전 기사들이 하나같이 스마트폰을 보며 콜(call)이 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콜은 PDA기기나 휴대폰에 뜨는 고객정보(현 위치, 행선지, 요금, 연락처)를 말한다. 그들은 콜을 알리는 ‘띵동-’ 소리가 나면 곧바로 화면을 터치해 일감을 얻어낸다.


10년차 대리운전 경력의 정광모(47)씨는 이 바운드의 사장이다. 처음 이 생활에 적응 하는 데는 3개월이나 걸렸다. 그는 “처음엔 힘들었지만 이젠 살만하다”고 덤덤하게 말한다.
그는 이 일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을까. 기자의 어쩌면 뻔한 질문에 새벽에 잠 못자고 대리운전을 할 수밖에 없는 대리기사들 저마다의 사연이 쏟아졌다. “대리운전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직업을 자기 마음대로 선택하기 힘든 사람들이에요.” 이 말인즉슨, 직업선택권의 폭이 너무나도 좁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신용불량자, 사업실패 등으로 빚을 갚으려다 보니까 대리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대리운전 기사들 중 고학력자, 과거에 부자였던 사람들도 꽤 있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사업실패, 명예퇴직 등 냉혹한 사회의 맛을 본 사람들이 하루하루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이 바로 대리운전인 셈이다. 아이 셋, 아내, 아버지 이렇게 여섯 식구가 딸린 가장인 정씨는 “먹고 사는 것은 해결이 되지만 저축까지 할 여유는 없다”며 “이 일은 시작하기도 쉽고 쉬고 싶을 때 쉬면되지만, (경제적인 여유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막상 쉴 수도 없다”고 말한다. “딸린 처자식이라도 없다면, 뭐라도 해볼텐데….” 그가 이 일을 하게 되는 원동력은 오로지 ‘가족’뿐이다.


거기다가 요즘엔 일이 많이 줄고 있다고 한다. “오늘 먹고 죽자” 하는 음주문화는 없어져가고, 경기는 점점 안 좋아지니 당연한 일이라고 한다. 대리기사의 수와 수입은 반비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대리운전 기사는 점점 많아지는 반면에 자연스레 일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특히 직장생활하면서도 밤에 짬짬히 저녁에 두 세 시간만 투잡으로 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당장 손에 쥘 돈이 필요하고 대부분 그 돈으로 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수도권에서만 약 7만명의 대리운전 기사들이 매일같이 밤거리로 나서는 이유다.


밤 열두시쯤 됐을까. 이때 이아무개 할아버지(72)가 천막에 와서 정씨와 대화를 나눈다. 정씨는 “들어가실 시간 되셨죠?”하고 물어왔다. 이 할아버지는 “마음비우고 돌아다니는 게 편해”라고 답하며 허허 하고 웃는다. 그는 사업체, 특허도 갖고 있지만 불경기 때문에 저녁에 나와서 일한다. 이 일을 시작한지 1년하고도 2개월째다. “아마 이 쪽에서는 최고 형님이죠? 허허허.” 정씨가 농담을 건넨다. 이 할아버지는 최고령 뻘이지만 젊은이 못지않게 콜 프로그램이 탑재된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다룬다. 그는 “늙어서도 일한다는 자부심, 젊은 층들에게 사회적인 짐을 덜어준다는 것이 좋다”며 “할 수 있는 데 까지 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할아버지는 정년퇴직 후 제조업을 시작했지만 그마저도 힘들어서 이 일에 발을 담그게 됐다.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데는 사연이 있었다. 자식들은 이 일에 반대했고 지금도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할아버지는 대리운전 일이 참 재밌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항상 긍정적이고 즐거운 일이라 생각하면서 일해야 한다”며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끝도 없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들한테는 꼭 맞는 직업”이라는 점을 재차 말했다. 시간이 훌쩍 흐르고 이 할아버지는 열두시 반에 있는 버스 막차를 타러 갔다.


“오늘 얼마나 버셨슈?” “오늘 하루 일 쉬었지 뭐.”
몇몇 대리운전 기사들은 서로 ‘오늘 많이 벌었나’ 친근하게 말을 건넨다. 하루 5만원 미만을 벌었을 땐 서로 ‘오늘 하루 일 쉬었다’고 허허 웃으며 말한다. 이들은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운이 따라줘야 돈도 벌고 시간도 벌 수 있다고 한다. 대리운전 기사들은 콜이 뜨면, 순간적으로 ‘여길 가야되나 말아야하나’ 머릿속으로 기회비용, 손익 등을 계산한다.


한 콜당 적게는 1만원 많게는 2만 5천원을 받는다. 하지만 손님을 배정받을 때마다 배차수수료를 20%나 소속 대리운전 업체에서 가져간다. 거기다가 콜 프로그램 사용료, 보험료는 한 달에 고정적으로 빠져나가는 돈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만약 콜을 접수했다가 취소를 할 경우에는 콜 취소비가 500원~1,000원이 저절로 빠져나간다. 즉, 하루에 12만원을 벌어야 밥값, 이동비, 배차수수료 등을 제하고 순수입이 8~9만원이 남는다. 대리운전 업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대리운전업체와 프로그램업체의 ‘횡포’를 꼽는 이유다. 다음 콜을 받은 곳까지 가는 교통비와 기타 잡비 한 푼을 쓰는데도 망설일 수밖에 없다.
피크타임인 밤10시에서 새벽1시 이 세 시간동안 부지런히 뛰면 4~5만원 가량은 손에 쥘 수 있다. 더 많이 벌려면 새벽 3~4시까진 해야 되지만, 요즘에는 1시 이후에는 거의 대리운전을 찾는 손님들의 콜이 끊어지는 편이다.


젊어 보이는 여자가 천막 안으로 들어온다. 스스럼 없이 다른 남자 대리기사와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니 베테랑 대리운전 기사 못지않아 보인다. “여자가 겁도 없이 잘 다녀.” “5~6년 정도 했죠?” “네 그렇죠. 그 정도, 잠깐 쉬긴 했는데….” 아주머니(40)에게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자세하게 말하면 욕밖에 안 나온다”며 무심하게 답한다. “남자고 여자고 5~6년이면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봐야지 뭐.” 옆의 남자 대리운전 기사가 말을 거든다. 이 일을 시작한 데는 무슨 사연이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무언가를 말할 듯 말 듯 망설이는 모습이었다. 단지 “노래방 도우미 이런 건 못 하겠더라고…” 이 한마디만을 들을 수 있었다. 그때 ‘띵동-’ 하고 콜이 떴다. 아주머니는 “평촌 가야겠다”며 황급히 자리를 떴다.


새벽1시경 바운드를 찾은 정씨의 동료 계명룡(41)씨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하루 벌어서 하루에 술이나 도박으로 번 돈을 다 쓰는 사람들도 꽤 있다”며 대리운전을 ‘하루살이’라고 칭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만약 하루에 10만원 이상 벌면, 5만원은 무조건 저금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왼쪽 바지주머니에는 저금할 돈 5만원이 있었다. 그는 이렇게 자기관리를 하지 않으면 망가지기 쉽기 때문이라고 한다. 8년 전 사업실패로 이혼 후 이 일에 발을 담근지 10년째다. 하지만 남들한테는 “작년부터 했어요”라고 말하곤 한다. 10년째 이일을 하는 건 자신에게 창피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그는 대리운전세계가 더 바람직하게 발전하길 바란다. 현재 대리운전기사는 면허증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잘못된 현실과 대리운전업체의 횡포에 대해 역설했다. 심지어 ‘대리운전업체는 대리운전기사들을 등쳐먹기 위해 존재 한다’는 말까지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아직까지도 대리운전의 세계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존재하고 있었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그들을 위한 법안이 통과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오늘도 대리운전 기사들은 살기 위해 이리 저리 바쁘게 뛰어다닌다. “힘든데 고생하셨습니다.” 손님의 이 한마디면 보람을 느낀다는 그들. 전국의 대리운전 기사들은 오늘도 ‘하루살이’를 위해 밤거리를 나선다.


 박윤조 기자 shynjo03@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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