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볼펜] 교수님 바쁘시죠?
[백색볼펜] 교수님 바쁘시죠?
  • 김상천 기자
  • 승인 2012.05.24 00:07
  • 호수 13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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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만 되면 학보 만들기가 민망하다

◇ 작년 5월, 스승의 날을 앞둔 단대신문 1301호 1면 머릿기사로 ‘스승님께 띄우는 편지’ 특집기획을 실었었다. 학생들이 스승에게 보내는 진솔한 감사 인사를 추려 스승의 날 의미를 다지는 일은 학보사에서 해볼만한 기획이라 여겼다. 한데 전혀 예상 못했던 문제가 생겼다. 다양한 학과 학생들에게 받은 편지 중 우리 대학 교수한테 띄운 편지가 단 한 장도 없었다. 초중고 선생님이나 학원 선생님, 심지어 특강 강연자한테 보내는 편지는 있었다. 거참…. 당시가 일간지에서 교수와 학생 간의 관계 소홀 문제를 어젠다로 삼던 때라 기획 취지에는 교수와 학생 간의 관계를 다져보자는 의미도 있었는데. 영 맥이 빠졌다.

◇ 1·2학년이 쓴 편지가 많아서 그런가? 중간 편집회의를 거쳐 기자들은 다시 고학년들에게 ‘가급적 우리 대학 교수한테’ 띄우는 감사 편지를 부탁했다. 그러자 “우리 대학 교수 말고 다른 사람한테 쓰면 안 되냐”는 말이 돌아왔다. 씁쓸했다. 결국 조판 당일 수습기자 한 명이 입학사정관 면접 때 감독관으로 만난 교수에게 편지를 썼다. 그걸 제일 첫 번째에 넣고 부랴부랴 체면치레를 한 뒤 신문을 찍었다. 단대신문은 전국 고등학교나 주요 도서관으로도 발송된다. 이 기획 안에 단국대 교수에게 고마운 단국대 학생이 한 명도 없다는 걸 누가 알아챌까봐 두려웠다. 1면 하단에 기획일러스트로 그려 넣은 카네이션이 민망했다. 이제야 고백한다.

◇ 지난 호(1327호) 단대신문 발행일이 스승의 날이었다. 관련 기획을 해볼까 하다가 씁쓸한 작년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도 그냥 넘어가긴 뭐해서 여론면 주제를 ‘내 인생의 선생님은 누구?’로 잡고 웅담을 받았다. 거참… 예상은 했지만, 두 캠퍼스 다양한 학과·학년 재학생 수십 명 중에서 우리 대학 교수한테 편지를 쓴 사람은 올해도 한 명이 없었다. “여러분, 아프시죠? 힘드시죠? 저도 압니다.” 이 말이면 멘토가 되고 베스트셀러 저자가 되고, 유력한 대선후보가 되는 세상인데 우리 대학 교수들은 왜 편지를 못 받을까.

◇ 한 교양과목에서 자신의 멘토 3명을 뽑아서 분석해오는 과제를 내준 적이 있었다. 다들 멘토가 누굴지 궁금해 둘러보다 우리 대학 교수는 한 명도 없다는 걸 알았다. 다른 대학 교수들은 참 많기도 했다. 다른 학생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나는 이제껏 강의실에서 감동을 느껴본 적이 거의 없다. 인간적 유대관계를 느껴본 일도 드물었다. 아니, 다 고사하고 학생에게 인간 대 인간으로 가까이 가려는 교수를 몇 명 못 봤다. 사실 학생들은 이제 기대를 아예 안 하는 분위기다. 논문에 연구실적에 보직·겸직에 업적평가니 강의평가니. 요즘 교수들 바쁜 거 모르는 사람 없다. 그래도 이건 너무 창피한 일이다. 스승의 날만 되면 학보 만들기가 민망하다니.  <칙>

김상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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