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멘붕’ 대한민국
[사설] ‘멘붕’ 대한민국
  • 단대신문
  • 승인 2012.05.29 11:36
  • 호수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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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붕.’ 멘탈 붕괴의 약어. 혼돈, 황당함, 판단불능 상황을 빗대어 쓰는 말. 특정 세대의 유행어라 할 수도 있고, 흥미로 내뱉는 속어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그 말이 회자되는 저간의 맥락이 그리 단순한 것은 아니다. 

알바에, 학점에, 스펙에 치이고 암울한 취업기상도에 눌려 있는 대학생들의 심리상태를 ‘멘붕’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좋은 일자리는 늘지 않고, 인턴이니, 비정규직이니 하는 낮은 품질의 일자리만 늘어나는 요즘, 불안한 미래에 시달리는 2~30대 젊은이들의 마음 역시 ‘멘붕’에 가깝지 않을 수 없다.

개인 뿐 아니라 사회 역시 ‘멘붕’ 상황이다. 수많은 사건과 갈등이 빚어지는 배경, 그 사안들이 진행되고 처리되는 과정, 그 이후의 결과 등등을 짚어볼 때, 상식과 순리에 맞게, 원만하게 마무리 지어지는 일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벌써 100일을 훌쩍 넘긴 문화방송 노조의 파업사태는 우리 사회의 갈등해소 능력이 어느 수준에 와 있는가를 보여주는 절정의 사례이다. 보도에 따르면 그 사태의 핵심 인물인 김재철 사장은 본인여부를 묻는 기자에게 ‘저는 그런 사람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한다. ‘네가 네가 아니라면 너는 도대체 누구냐?’ 파업사태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해프닝일 수도 있지만 사안의 당사자가 처한 심리적 공황상태를 보여주는 멘붕의 백미이다.    

정부를 이권 나눠먹기 집단 정도로 접수하고 운영해온 이명박 정권의 추악한 행태도 그렇고, 소위 진보의 정치를 내세우고 있는 통합진보당의 몰상식한 내분 역시 기왕에도 심했던 한국정치에 대한 냉소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쌍용자동차 사태로 이미 22명의 해고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그 끝을 알 수 없다. 제주 구럼비 바위는 서서히 자갈로 부서져가고 있고, 재능교육 학습지 선생님들의 복직싸움은 이미 1600일을 넘겼다. 김진숙씨의 고공농성과 시민들의 희망버스 운동으로 합의를 이뤄냈지만 한진중공업 상황은 그 이전과 거의 달라지지 않고 있다.

‘멘붕’의 원인을 복잡한 용어로 풀 수도 있지만, 쉽게 설명하자면 상식과 그에 기초한 윤리적 틀, 흔히 순리라 부르는 것이 힘을 가지지 못하고 있고, 그로 인해 개인과 사회가 심한 무력감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올바른 것은 극히 취약하고 다만 권력이 정의를 규정할 때 개인과 사회의 분열증적 징후는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멘붕상황이라 해서 희망을 버릴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히려 새로운 체제와 질서에의 강렬한 염원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혜의 부엉이는 황혼 무렵에 비로소 비상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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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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