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볼펜] 스트레스
[백색볼펜] 스트레스
  • 김상천 기자
  • 승인 2012.09.04 12:42
  • 호수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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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징거려봤자 스트레스는 돌고 돈다

◇ 방학 때 가평 자라섬에서 열린 월드 일렉트로니카 카니발에 다녀왔다. 새벽 네 시의 밤하늘 위에서 메인스테이지의 현란한 불빛이 전 방위로 춤췄다. 물기를 머금은 공기 사이로 대파와 쪽파 같은 녹색 조명이 길게 뻗어나갔다. 빛의 출발점에서 판 돌리는 디제이 앞에, 빛에 홀려 빛을 따라온 젊은 군중들이 새카맣게 모여들었다. 그들은 무대에서 흰 연기가 퍼질 때마다 살충제를 맞은 나방처럼 뛰고 소리 지르고 머리통이며 팔다리며 온몸을 흔들어댔다. 쿵쿵쿵 스피커가 울릴 때마다 대형 스크린에 붙은 나방들의 날개가 떨렸다. 축제는 밤새 이어졌다.

◇ 매년 페스티벌에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 열심히들 논다. 작정하고 와서 필사적으로 논다. 춤추느라 바닥난 체력을 술과 에너지드링크로 채워가며 기어이 다시 일어나 불빛 속으로 뛰어든다. 해가 갈수록 더 비장(!)해지는 분위기를 느끼며 나는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가장 열정적이었던 무대는 언제나 가장 최근의 무대다. 관객은 대부분 2~30대다. 받는 스트레스가 많은 만큼 그걸 해소하는 일에도 절실해지나보다. 아마도 스트레스 증가율과 광란의 정도는 산술급수적으로 같이 올라가는 것 같다. …아니면 혹시 무한도전이 안 해서 그랬나?

◇ 스트레스 받지 마시구요. 의사들이 좋아하는 이 말은 듣는 순간 스트레스를 받는 말이다.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 한다는 스트레스. 우리는 사실 이런 종류의 스트레스도 꽤 많이 받고 산다. 취업이나 학점만이 스트레스는 아니다. 놀거나 쉴 때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니야, 이렇게 스펙에만 시달리다 졸업할 순 없어…. 놀아야 한다는 스트레스다. 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는데…. 이건 내가 좋아하는 취미를 찾아야 한다는 스트레스. 심지어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여자들은 그걸 카페에서 이름이 일곱 글자 이상인 커피와 케익을 시키면서 표현한다. 아 다이어트 해야 되는데….

◇ 간접적으로나 직접적으로나 어차피 우리가 스트레스를 피할 길은 없다. 그 와중에 아프다고 징징거려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 청춘 어쩌고 하는 말도 지금은 위로가 되겠지만 조금만 지나면 보는 순간 스트레스가 될 말이다. 나는 차라리 그냥 이런저런 환경과 생겨먹은 상황을 묵묵히 인정하는 방법을 택하련다. 멘토라는 사람들의 위로는 간지럽고, 자기계발서의 문구들은 소름끼친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그건 도 닦는 사람들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다. 당장 돈 벌어서 밥 먹어야 되는데 멈추긴 어떻게 멈춰. 그러니까 결국 힘든 건 힘든 거고,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런 환경이니까, 그걸 버틸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다. 자, 또 새로운 학기가 돌아왔다. 또 새로운 스트레스들을 받아야 한다. 시곗바늘은 돈다. 우리가 사는 발밑도 돌고, 아침 등굣길마다 그 위를 달리는 버스도, 버스 안에서 듣는 선곡 리스트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삶은 평생 다시 돌고 돌고 돈다. 그 명백한 사실도 돈다. 

<칙>

김상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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