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왕세자 실종사건 - 구동과 자숙의 살구처럼 시린 사랑, 왕세자는 없었다
<뮤지컬> 왕세자 실종사건 - 구동과 자숙의 살구처럼 시린 사랑, 왕세자는 없었다
  • 이호연 기자
  • 승인 2012.09.04 12:45
  • 호수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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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문화in 56
▲구동과 자숙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있다. (사진제공 : 극단 ‘죽도록달린다’)

왕세자가 사라졌다. 피해자는 7세 왕세자, 용의자는 내관 구동과 궁녀 자숙. 제목으로 미뤄보나 신분으로 미뤄보나 주인공은 ‘왕세자’여야 한다.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뮤지컬 <왕세자 실종사건>에서 왕세자를 찾는 사람은 그의 보모상궁뿐이다.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조차 보모상궁의 절규를 통해서만 왕세자의 존재를 인식할 뿐이다. 지금 궁 안의 사람들은 오로지 한낱 내관과 궁녀인 구동과 자숙의 사랑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극의 도입부는 제목처럼 사라진 왕세자를 찾는 설정으로 시작된다. 궁 안의 모든 등장인물은 왕세자를 찾는데 정신이 없다. 왕세자를 찾아 우왕좌왕하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모를 드러낸다. 자숙이 왕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이 알려지고, 중전의 수족인 최상궁은 세자가 없어진 날 함께 있던 구동과 자숙의 관계를 의심한다. 궁 안은 의심과 질투로 달궈진다. 숨바꼭질은 서서히 생존게임으로 바뀐다. 그 속에서 구동과 자숙은 점점 더 ‘멍청한’ 사랑의 주인공이 되어간다. 그리고 이 멍청한 사랑에는 항상 살구가 함께 한다. 궁에 들어오기 전부터 일생을 궁과 함께하는 마지막까지 살구는 두 사람의 사랑의 징표인 셈이다.
뮤지컬의 메인 카피는 ‘살구처럼 시린 사랑’이다. 구동을 연기하는 배우는 한 인터뷰에서 살구가 그의 연인인 자숙과 같다고 말했다. 아무렇지 않지만 가장 큰 것,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결국은 손에 쥐어지지 않는 것. 궁에 들어오기 전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구동은 자숙에게 이별의 선물을 끝내 쥐어주지 못한다. 중요한 순간에 닿을듯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조그만 살구나무의 열매는 끝내 구동을 하늘의 섭리를 거역하는 내관이 되게 했다.
궁 안에서 다른 남자(왕)의 아이를 임신한 자숙에게 살구를 따주며 구동은 오히려 더 큰 미안함을 느낀다. 허락될 수 없는 신체와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자숙을 사랑하는 구동은 자숙의 말처럼 멍청하다. 하지만 그 멍청함에 관객들은 돌을 던지지도 동정하지도 않는다. 지켜보고 싶고 격려하게 만드는 멍청함이다.
뮤지컬 <왕세자 실종사건>의 또 다른 매력은 ‘런(run)’이다. 배우들의 동선은 라이브로 연주되는 배경음악에 맞춰진다. 계속 달린다. 극이 절정에 이르면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방울이 배우들의 몸을 흠뻑 적신다. 어떠한 무대 장치도 없이 무대를 달리며 연기하는 배우들이기에 몰입이 더욱 잘 된다. 배우들의 땀은 고스란히 관객의 눈물로 전해졌다.
아, 한 가지 잊은 점이 있다. 시작부터 끝까지 무대를 떠나지 않는 유일한 배우. 바로 보모상궁이다. 무대 한 쪽 끝에서 자신의 전부와도 같은 왕세자를 찾으며 달린다. 애절한 감정의 변화는 거의 없다. 그만큼이나 극의 본질을 잃지 않는 유일한 역할이다. 이는 또 다른 방식의 왕세자를 향한 살구 같은 사랑일 것이다.
구동과 자숙, 이루어질 수 없는 이들의 멍청한 사랑은 결국 살구의 신 맛을 따랐을까, 아니면 달콤한 향기를 따랐을까? ‘살구처럼 시린 사랑’은 10월 28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우리 대학 학생증을 지참할 경우 50%의 파격적인 할인 혜택도 제공한다고 하니 지금이 바로 살구를 맛볼 기회다.
 이호연 기자 hostory3253@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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