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국인의 책갈피 ① 소설가 강태식 동문
단국인의 책갈피 ① 소설가 강태식 동문
  • 강태식 동문
  • 승인 2012.09.04 12:48
  • 호수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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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가던 그때, 펜을 들게 해준 책

내 손에 들려있는 책은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다. 참 오래도 들고 다녔다. 책꽂이에는 네 권의 <아웃사이더>가 꽂혀있다. 초창기 판부터 최근 판까지. 그 중에는 책표지가 거꾸로 붙어있어 책장을 넘기면 글자들이 뒤집혀 있는, 일명 희귀본도 한 권 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아웃사이더>라는 이 책을 참 좋아한다.
<아웃사이더>를 처음 만난 건 군대에서다. 나는 소위 똥포라는 별호의 155m 포병이었고, 덩치가 좋은 나는 그 그 똥포 밑에 들어가 제일 힘든 일을 했다. 그러다 훈련 중에 포가 뒤집혔다. 포가 뒤집혔으니 사고였고, 나는 수 백 톤이나 하는 그 똥포 밑에 깔렸다, 다행히 발만. 그래서 이런저런 군병원을 전전하다가 결국은 부산통합병원까지 이송을 갔다.
아, 군병원은 지루했다. 기상과 동시에 권태가 밀려왔고, 하루 종일 권태에 시달리다 소등이 되면 또 얼마동안 눈을 감고 권태에 괴로워했으며, 결국에는 권태에 지쳐 잠이 들었다. 매일 그런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젊은 병사들은, 어디 한군데가 부러졌다뿐이지 나머지는 멀쩡한, 뜨거운 피가 마그마처럼 용솟음치는 대한의 건아들은 하나 둘씩 미쳐갔다. 집단적으로 뜨개질을 하기 시작했고, 그나마 개성이 강한 병사들은 십자수를 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직물은 기간병을 통해 업자와 밀거래 되었다.
뜨개질이나 십자수처럼 여성취향의 여가선용에 반감을 가진 병사들은 종이를 접었다. 초심자들은 백조를 접고, 중견들은 그보다 난이도가 높은 배를 접었으며, 고수들은 공룡이면 공룡, 용이면 용, 물 흐르듯 생각이 가는 데로 막힘없이 접었다. 목발로 칼싸움을 하고 링거 줄로 노리개 매듭을 엮었다. 어쩌면 미친 게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정상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나 역시 미쳐갔다. 발에 기브스를 하고 침대에 누워있던 어느 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강한 충동이 밀려왔다. 뜨개질을 하고 싶었다. 이 손으로 한번만 십자수를 놓을 수 있다면…. 백조부터 시작해 천의무봉, 무념무상의 경지에도 도달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 나에게는 자본금이 없었다. 지금도 부모님은 내가 기사회생한 몸이라는 걸 모르신다. 그래서 책을 읽기로 했다.
너덜너덜하고 누렇게 뜬 <아웃사이더>. <아웃사이더>는 비평서다. 말 그대로 문학 속에 등장하는 ‘아웃사이더’들을 실존철학적인 입장에서 소재하고 재해석·재조명한 글이다. 저자 콜린 윌슨에 대해 잠깐 말하자면, 정규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문학 전반을 독학한 사람이다. 그런 그를 하루아침에 스타덤으로 올려놓은 책이 바로 <아웃사이더>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봤더니 유명해졌더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영국에 둘 정도다. 한 명이 바이런이고 나머지 한 명이 바로 이 콜린 윌슨이다.
첫 장부터 충격이었다. 세계를 이렇게 바라보고, 이렇게 규정짓는다는 것이 놀라웠다. 중간부에 접어들면서 콜린 윌슨의 해박한 지식과 일관된 시선, 힘 있는 사상에 감탄했고,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나는 온몸에 닭살이 돋는 전율을 만끽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소설을 써야지….
그래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아웃사이더>는 나에게 문학의 힘과 매력, 문자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들어있는 사상의 아름다움을 알게 해 주었다. 어쩌면 난 <아웃사이더>를 소설로 쓰겠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래서 20년 가까이 계속 맨땅에 헤딩만 했다.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게다가 재미까지 없는 소설은 역시 인기가 없었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내 인생의 최고의 책은 <아웃사이더>다. 그 책을 이렇게 여러분 앞에 내민다.  강태식(국어국문·92) 작가


※ 강태식 동문은 소설 <굿바이 동물원>으로 2012년 제17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펜으로 쓰고 펜으로 이력을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후배이자 아내인 서유미(국어국문·94) 작가와 함께 행복한 집필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강태식 동문
강태식 동문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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