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구공 ① 팬문화
고고구공 ① 팬문화
  • 김예은 기자
  • 승인 2012.09.04 21:14
  • 호수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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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수'를 위하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
▲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는 1990년대 팬문화도 엿볼 수 있다.

흰 옷을 입고 한 손에는 털장갑을 끼고, 다른 손에는 흰색 풍선을 들고 목이 터져라 ‘캔디’ 노래를 따라 부른다. “대체 원숭이 닮은 놈의 어디가 좋냐”며 토니 오빠의 브로마이드를 찢는 아빠와는 매일 전쟁을 치른다. 사랑하는 오빠들의 무대를 보기 위해서라면 조퇴, 심지어 가출도 서슴지 않으며, H.O.T 팬클럽 부산지회 임원이 되기 위해 혈서까지 쓴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여자주인공 자칭 안승부인(H.O.T 멤버 토니안의 본명 안승호에서 ‘안승’을 따와 부인이 되고 싶다는 의미를 더했다.) 성시원의 이야기다. 실제로 1997년은 그룹 H.O.T, 젝스키스 등이 아이돌이라는 이름으로 가요계에 등장해 10대 소녀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때다. 거리에는 H.O.T의 ‘캔디’ 복장과 S.E.S의 왕방울 머리를 따라한 소녀들이 넘쳐났다.

이때부터 팬들의 다소 과격한 애정표현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오빠들’을 보기 위해 방송국 앞으로 모여들고,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자동차로 달려들기도 했다. 수십 통의 팬레터와 선물을 보내거나 연습실과 숙소로 찾아가 그 앞에서 밤을 새우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여자 연예인들은 ‘오빠들’과 스캔들이 났다는 이유로 혹은 방송에 함께 출연했다는 이유만으로 무차별 테러의 대상이 됐고, 이런 어긋난 팬심(心)은 대중들의 질타를 받곤 했다. 

그런데 이제 팬들이 영리해졌다. 이전에는 도시락과 간식, 각종 고가의 선물 등을 통해 ‘우리 오빠들만’을 향한 애정을 보여줬다면 지금은 ‘오빠들의 이미지’를 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이돌 팬에 대한 대중들의 부정적인 인식을 생각해 팬들은 질서정연하게 공연을 관람하고, 공연 후에는 자신들이 앉았던 자리까지 깔끔하게 정리한다.

콘서트나 영화 제작발표회와 같은 행사장에는 쌀화환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과거의 팬들이 단순히 축하나 응원을 위해 화환을 보냈다면 최근에는 기부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쌀화환으로 응원, 축하와 나눔을 동시에 실천하는 것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팬들은 십시일반 모은 돈을 스타의 이름으로 백혈병 재단에 기부하거나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20년 전의 소녀들은 가요방송 무대를 녹화하고, ‘오빠들’의 라디오 방송을 녹음한 공테이프를 수도 없이 돌려 들었다. 그리고 20년이 흐른 지금의 팬들은 ‘대포카메라’(대포만한 카메라라는 뜻)로 사진기자보다 선명한 사진을, 방송국 카메라보다 정확하게 무대 영상을 찍는다. 세월은 아이돌 가수를 변하게 했고, 팬들의 연령대를 10대 소녀에서 2,30대 이모, 40대 삼촌으로 확장시켰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팬심(心)이 있다.

 김예은 기자 eskyen@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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