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방망이와 나무기둥
솜방망이와 나무기둥
  • 김보겸
  • 승인 2012.09.11 13:41
  • 호수 13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무기둥’ 될 판결을 기대해본다

요즘 대한민국이 또다시 시끄럽다. 그 시끄러운 이유가 런던올림픽 금메달 획득처럼 좋은 소식 때문이었으면 좋았겠지만, 대신 ‘성폭행’이라는 단어가 전국을 맴돌고 있는 것이 그저 아쉬울 뿐이다. 최근 대한민국 내의 성폭행이 한여름의 모기 떼 만큼이나 그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범죄의 질 또한 심각해졌다. 더군다나 이번에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성폭행’ 중에서도 ‘유아 성폭행’이다. 2008년 조두순에 의해 발생한 ‘나영이 사건’에 이어 지난달 30일 발생한 ‘나주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은, 현재 대한민국 성폭행의 수준이 이전에 비해 전혀 달라진 것이 없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한민국을 ‘강간의 나라’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성폭행범에 대한 처벌 수위’도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현행 대한민국 성폭력특별법에는 13세 미만의 여자에 대하여 강간의 죄를 범한 자는 7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고, 만약 그 범죄자가 사람을 상해하거나 상해에 이르게 한 때에는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 법률을 바탕으로 ‘나영이 사건’을 바라보면 이 판결이 법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은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이 판결이 논란이 되었던 것은 피해자가 영구적 피해를 입은 것에 비해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현저하게 낮은 것이 아니냐는 문제 때문이었다. 하지만 논란은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결국 논란으로만 끝이 났고, 가해자에 대하여 달라진 점은 전혀 없었다. 또한 사건 이후, 제도적으로 전자발찌 착용·성범죄자 신상정보 인터넷 공개 등 여러 가지를 실시하기는 했으나 성폭행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늘어났다. 그런데다가 이번 ‘나주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사람들은 성폭력특별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처벌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법은 사회의 정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만일 그 법이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지 못한다면, 그 법은 이미 법으로서의 효력을 잃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현 성폭력특별법에서 명시하는 처벌에 대하여 사형제도·물리적 거세 등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각각의 대안들이 가지고 있는 장단점들로 인해 어느 하나만을 선택하기도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법률의 ‘강화’가 아니라 ‘시행’이다. 대한민국의 처벌 수준을 두고 ‘솜방망이’라고 하는 것은 현재 정해져 있는 법률이 강력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정해진 법률 속에서 강도를 낮추기 때문이다. 법의 시행은 이미 정해진 법의 공정성을 바탕을 두고, 그 공정성은 국민의 신뢰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 내 성폭행범에 대한 처벌에는 국민의 신뢰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진(秦)나라의 ‘상앙’은 백성에게 북문으로 나무 기둥을 옮기게 하는 것으로, 법에 대한 백성의 신뢰를 이끌어내었다. 우리는 이 점을 주목해야 한다.
아직 ‘나주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인 고종석에 대한 판결이 나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지만 ‘제 3의 나영이’, ‘제 3의 조두순·고종석’의 등장을 막기 위해서는 이 판결이 나무 기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절대 간과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김보겸(국어국문·3)

김보겸
김보겸

 dkdds@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