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 아동 성범죄 처벌 수위 적절한가?
[백묵처방] 아동 성범죄 처벌 수위 적절한가?
  • 허재영(교육대학원·교육학과)교수
  • 승인 2012.09.11 16:21
  • 호수 13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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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이 많으신 법학 교수가 학생들을 데리고 큰 건물의 옥상 위로 올라갔다. 그 교수는 학생들에게, “저 아래 거리에 무엇이 보이는가?”라고 물었다. “자동차가 보입니다.”, “사람들이 보입니다.” 등등 학생들은 제각기 답을 내 놓았다. 그러자 노교수는 “다 틀렸다. 내 눈에는 저 아래 권리·의무 관계만 보인다.”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법학의 특징이 권리·의무 관계를 연구하는 데 있다는 법학자들의 이야기이다.

이번 백묵처방의 주제를 받아들고 어려운 숙제를 부여받은 학생들처럼 많은 고민을 했다. ‘아동 성범죄 처벌 수위 적절한가?’라는 주제는 작금의 현실로 볼 때 ‘부적절하다’라고 쉽게 답해 버릴 수 있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거나 ‘환경이 그를 흉악범으로 만들었다’ 심지어는 ‘범죄자일지라도 인권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등의 어떤 논거를 제시하더라도 작금의 아동 성범죄자 처벌 수위가 미흡하다는 데에는 이론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쉽게 구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아마도 나의 판단이 ‘권리·의무 관계’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사회학자도 아니고, 심리학자도 아니다. 제각기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사람의 생리를 고려한다면, 인간의 행위와 그에 대한 결과 또는 결과에 대한 처벌의 적절성을 논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사실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정의’가 무엇인지를 고려하여 판단할 문제다. 그런데 정의와 관련된 문제는 철학이나 법학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에서 고차원적인 논증이 가능한 주제이다. 학문사를 고증할 때 ‘이상’과 ‘조화’를 목표로 하는 정의론이나 ‘지혜와 용기 및 절제의 어우러짐’을 추구하는 정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보복적인 정의관, 그뿐만 아니라 ‘경제적 정의’, ‘사회적 정의’, ‘정치적 정의’, ‘법적 정의’ 등과 같이 ‘정의’라는 말이 들어 있는 문구만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그 어떤 논리를 개진한다 할지라도 내 말에 수긍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이러한 배경에서 다시 ‘아동 성범죄 처벌 수위 적절한가?’에 대한 편협한 답을 찾고자 한다. 매우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생각일지 모르지만, 아동 성범죄는 저항 능력이 없는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라는 점과 아동이 평생 짊어질 상처를 고려할 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범죄다. 법학자나 심리학자 또는 사회학자가 아니기 때문일지 모르지만, 나는 아동 성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텔레비전에 등장하여,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거나 ‘사회적 환경이 그를 범죄자로 만들었다’ 또는 ‘형벌은 처벌보다 교화에 의미가 있다’라고 하는 말을 하는 사람조차도 적대시할 때가 많다. 교육적으로 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교육은 사람을 가르쳐 변화를 유도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초창기의 교육학자들은 ‘교육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누차 강조한 바 있다. 사람이 더 이상 사람이 아닐 경우에야 가르친다고 변화가 있을 수 있을까? 법, 사회, 심리, 교화, 교육 이 모든 것들은 생각하고 대화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유용한 언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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