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 淸明酒를 亡身酒로 옭아매려는 구속, 금주
[백묵처방] 淸明酒를 亡身酒로 옭아매려는 구속, 금주
  • 엄기표(교양기초교육원)교수
  • 승인 2012.09.18 15:36
  • 호수 1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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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백묵처방은 술자리와 관련하여 ‘캠퍼스 내 금주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주제가 제시되었다. 이 주제를 처음 보았을 때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나 자신이 이 주제에 접근할 만큼 떳떳한가에 대하여 깊이 숙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 양심의 가책과 신독을 강조했던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최근 금주로 기우는 듯한 사회적 분위기가 감지되고 나 자신도 그런 여론에 내몰리는 듯하여 아쉽기도 하다. 다시는 건널 수 없는 과거를 성찰하는 자세로 음주와 금주를 넘나들어야 하겠다.

술은 인류 역사와 함께 기나긴 세월을 함께 해왔다. 술은 역사를 새롭게 쓰게도 했고 신화를 만들게도 했다. 술은 악과 선을 넘나드는 경계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술은 극과 극의 이중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는 인류가 만든 흔치 않은 액체이다. 어쩌면 술은 인류에게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가져왔지만 그동안 미화된 측면이 강한 酒客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이런 논란이 음주 아니면 금주라는 문화의 탈을 쓰고 술자리가 아닌 제도권의 엄숙한 책상 위에서 논의의 장이 터졌고, 찬반으로 나뉘어져 뜨거운 酒爭이 전개되고 있다. 모두 논리가 있고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 건강과 자율, 권위와 대화, 억압과 소통, 금주와 음주간의 양자 대결 구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의 대학생활은 나름대로 학문에 정진해 보고, 사랑을 느껴보고, 고뇌에 가득차 보고, 낭만과 추억을 만들고자 했던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여유로움을 느끼기도 전에 생활전선에 취업준비에 내몰리고 있다. 인생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대학생활을 주체가 아닌 객체로 살아가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어 못내 아쉽다.

앞으로 사회생활을 주체적으로 해야 될 그들에게 기성세대의 가치관으로 지나치게 통제하고 억압하려는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다.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문화도 변해야 하지만 열정과 사랑으로 넘치는 젊은이들을 일률적인 방식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짜여진 틀 속에 가두는 것보다 소통하면서 그 틀 속으로 유도하는 것이 공존하는 지름길이자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고 酒權이 주어졌다고 하여 자율과 방임을 혼돈해서는 절대 안된다. 금주와 음주는 현실과 이상의 차이도 아니다. 인간이 만든 것이 술이지, 술이 인간을 만들지는 않았다. 술의 진경을 체득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술을 통하여 삼매에 드는 것도 가당치 않은 말이다. 이를 혼동하고 방임하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스스로 옭아맨 금주라는 틀이 옥죄고 있는 지도 모른다.

지나친 음주는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동물이 되게도 한다. 나에게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할 때, 내가 이길 수 있을 때, 나와 공존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주권이라 할 수 있다. 술이 술을 먹는 것이 아니라 중용으로 술을 먹는 미덕과 문화가 있는 술자리가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금주를 주장하는 쪽도, 음주를 주장하는 쪽도 모두 일리는 있다. 금주와 음주를 넘나드는 모든 이들이 고루 酒觀과 酒禮를 갖춘 酒道를 통하여 酒賢 酒聖에 이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모두를 위한 공리공존의 틀이 짜여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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