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막하 ⑬ ‘찌질남’ 대 ‘찌질남’
막상막하 ⑬ ‘찌질남’ 대 ‘찌질남’
  • 김예은 기자
  • 승인 2012.09.18 15:44
  • 호수 1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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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는 누나’ 옆에는 꼭 ‘찌질남’이 있다
▲MBC 드라마 '아이두아이두'에서 사랑스러운 찌질남 역을 능청스럽게 소화해 낸 배우 이장우.


로맨틱코미디의 정석은 ‘어리숙하고 평범한 여주인공과 배경도 얼굴도 몸매도 다 가진 세상 혼자 사는 남자주인공의 로맨스’다. 일명 신데렐라와 백마 탄 왕자님의 만남이다. 이 전통적인 조합은 여성 시청자들의 환상을 자극해 국민드라마를 여러 번 탄생시키며 공식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이제 이 공식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백마 탄 왕자님들이 강하고 느끼한 눈빛을 거두고 말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저 혼자 신의 사랑을 독차지 한 것 같던 드라마 속 남자주인공들은 ‘철’, ‘속’, ‘줏대’ 세 가지를 버리고 일명 ‘찌질남’으로 변신했다. 여자들을 설레게 하던 완벽한 남자들은 가고, ‘찌질’(‘보잘것없고 변변하지 못하다’는 ‘지질하다’의 비표준어)하고 궁상맞지만 귀여운 매력이 있는 남자들이 활개치고 있다. 찌질남들은 여자 앞에서 지갑을 당당히 꺼내지 못하고 ‘슈렉 고양이’ 같은 눈빛을 보내며 우물쭈물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아니, 그게 아니고요…. 내가 지금 돈…이…없어서…”

지난 7월 막을 내린 MBC 수목드라마 ‘아이두 아이두’의 이장우가 했던 대사다. 이장우는 극 중 짝퉁 구두업자에서 전문 슈즈디자이너로 인생역전을 꿈꾸는 대책 없는 낭만백수 태강 역을 맡아 김선아와 호흡을 맞췄다. ‘삼순이’로 뜬 김선아의 상대역으로 ‘남자 삼순이’라 칭할만한 태강이 등장했다는 게 재밌다.

이장우 역시 찌질남의 제1조건인 ‘철’이 없다. 대책 없는 행동에 여주인공 김선아의 골머리를 앓게 만들다가도 연하남 다운 능청스러움과 사랑스러움, 가끔 보이는 남자다운 매력으로 김선아를 사로잡는다. 능력 있고 성공한 여성으로 표현되는 김선아 옆에서 주눅이 들 만 한데도 찌질남의 제2조건인 ‘속 없음’으로 초라한 처지임에도 당당하고 자유로운 영혼을 무기로 내세운다. 해맑게 웃다가도 엉엉 우는 이 ‘찌질한’ 매력에 시청자들은 K.O 당했다.

이에 맞서는 사람은 역시 지난 7월 종영한 tvN 드라마 ‘아이러브 이태리’의 김기범이다. ‘아이러브 이태리’에서 김기범은 14살 소년의 내면과 25살 남자의 외면을 가진 황민수 역을 맡아 재벌녀 박예진의 옆에서 파격적인 연하남 연기를 펼쳐 보였다.

황민수 역은 이장우의 태강 역보다 나이도, 능력도, 지적 능력도 떨어진다. 가진 것이라고는 운동으로 다져진 훈훈한 몸매밖에 없지만 어린 내면을 무기로 엉뚱하고도 순수한 매력을 마음껏 발산하며 누님들의 마음을 훔쳤다. 김기범은 생각도 없고 가벼워 보이지만 이리저리 감정을 숨기고 의연하게 보여야 하는 박예진을 특유의 순수함으로 위로하고 그녀의 부족함을 채워줬다.

이처럼 백마 탄 왕자님이 아닌 2% 부족한 남자들이 로맨틱 코미디의 새로운 대세로 떠오르며 안방극장을 훈훈하게 달구고 있다. 완벽남들 보다는 덜 멋있지만 그래도 귀여우니 괜찮다. 시청자들로 하여금 드라마를 보며 ‘엄마미소’를 짓게 해 주는 것만으로도 이 새로운 흐름은 충분히 반길 만하다.  

김예은 기자 eskyen@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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