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프로그램의 두번째 평가기준
오디션 프로그램의 두번째 평가기준
  • 이호연 기자
  • 승인 2012.09.18 21:28
  • 호수 1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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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연을 캐스팅하겠습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찾아왔다.
여전히 같은 포맷으로 진행되지만 해가 갈수록 달라지는 점이 있다면 시청자의 주된 감정이 ‘희열’에서 ‘감동’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그리고 감동을 전해주는 건 애절한 노래가 아니다. 시즌을 거듭할수록 다양해지고 절절해지는 참가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이다. 불우한 가정사와 지병부터 여자 친구와의 사별, 소년원 복역까지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참가자들은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인상 깊게 기억되고, 이는 본격적인 경쟁에서의 긍정적인 결과로까지 이어진다.
자신의 이야기를 카메라 앞에 내놓는 이러한 방법은 승자가 되기 위한 편법이 아니다. 일단 실력이 밑바탕에 있어야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기회가 주어진다.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참가자의 자유 권한이고, 이를 더욱 과장해 보여주는 건 제작진의 의도이기 때문이다. 승자가 되기 위한 경쟁의 과격한 한 단면만을 보여주면서 퍼진 ‘악마의 편집’이라는 말이 이를 대변한다. 방송사는 사연을 원한다. 수익을 얻기 위해서 악마의 편집도 불사하는데 참가자가 직접 던져주는 ‘사연’이라는 떡밥을 무시할 리가 없다.
방송사가 사연을 가진 참가자를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감동과 화제성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수가 많아지며 참가자들의 실력 역시 늘었다. 참가자의 실력은 여전히 합격의 기본 전제조건이지만, 더 이상 감동을 주는 요소는 아니다. 비어있는 감동의 자리는 사연이 차지한다. 제작진은 ‘휴머니즘’이 가장 손쉽게 감동을 이끌어내는 수단임을 알고 있다. 우리와 별다를 것 없는 보통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기에 휴머니즘의 효과는 더욱 강력하다. 이들의 이야기가 묻어나는 노래에 감동을 받은 시청자들은 당연히 참가자와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는 문자 투표수와 시청률로 직결된다. 또 프로그램을 띄워야 제작진들이 산다. 참가자의 사연은 말하자면 제작진들에게 안심을 주는 ‘보험’인 셈이다.
사연이 최고의 무기로 등장하는 순간은 문자 투표로 승자가 결정되는 생방송이다. 이전 시즌의 우승자 허각과 울랄라세션에게는 2인자 존박과 버스커버스커에게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비등한 노래실력을 지닌 경쟁자들 사이에서 어필할 수 있는 어떤 무언가. 그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어느새 중요한 제2의 평가 기준이 됐다.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제작진은 사연을 가진 참가자에게 ‘천사의 편집자’이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다. 냉정한 경쟁 프로그램 속의 휴머니즘은 좋다. 하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의 1차 평가 기준은 실력이라는 점과, 억지 사연을 위한 강요와 조작이 들통 나는 순간 사연이 주는 감동은 급격히 시들어버리고 말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호연 기자 hostory3253@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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