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사람들을 만나다 ⑧ 연예기획사의 새벽풍경
새벽 사람들을 만나다 ⑧ 연예기획사의 새벽풍경
  • 이호연 기자
  • 승인 2012.09.18 21:30
  • 호수 1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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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 뜨거운 조명보다 더 뜨거운 열정이 있었다

사실 연예계는 기자와 거리가 꽤 먼 곳이다. 기자는 물론 주위에 연예인이 타고 난다는 끼를 가진 사람이 없다. 연예계의 화려함에 대한 환상보다는 ‘연예계의 이면’에 대해서 과장된 부정적인 소문을 많이 들어왔기에 오히려 거부감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분명 그 곳도 사람이 사는 세계일 것. 익숙하지 않은 곳이기에 더욱 호기심이 생겨 무작정 메일을 보냈고, 한 신생기획사에서 연락이 왔다. 결심이 선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던 지난 7월 29일. ‘내겐 절대로 상관없는’ 곳에서 살고 있는 연예제작자 임인용(38)씨와 밴드 ‘BOB4’를 만날 수 있었다.  <편집자 주>

각종 케이블 선이 바닥에 기하학적 무늬를 그리고 있는 경기도 평택의 한 공연장 뒤편. 무늬만큼이나 신경질적인 소음들이 오고 간다. 지난 7월 29일 새벽, 공연장 밖에서 박태환 선수가 오심을 딛고 획득한 값진 은메달이 여름날의 뜨거운 열기를 더했던 그 시각, 공연장 안에서도 그 뜨거운 열기를 지켜내기 위해 모든 스탭들이 분주하면서도 신중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올림픽 희소식에 기뻐할 수 있는 건 모든 녹화가 마무리되는 오후다. 방송국 사람들의 예민함의 근본적인 이유는 공연장 밖의 사람들에게 또 다시 뜨거운 열기를 전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새벽사람들을 만나다’의 주인공 임인용씨도 주변의 다른 사람들처럼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주인공에게는 방송국의 사원증도 없었고 화려한 메이크업과 의상도 준비되지 않았다. PD도 작가도 연예인도 아닌 그는 ‘제작자’였다. 연예기획사 대표의 눈은 무대에 고정돼있었다. 무대에는 데뷔한 지 100일이 채 안 된 신인 밴드 BOB4가 각자의 악기를 들고 서있다. 곧이어 신나는 노래가 시작되고 관객의 호응 대신 음향을 조절하고 동선을 확인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세 번에 거친 약 30분간의 리허설이 마무리되고 나서야 비로소 긴장된 분위기가 조금 풀렸다. 임씨는 PD, 작가를 비롯한 스탭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14년 동안 매니저로 또 제작자로 이 쪽 일을 해오면서 “사람 대하는 방법에는 도가 텄다”는 그의 말은 빈 말이 아닌 듯 했다. 무대를 바라보던 무거운 표정은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언제 그랬냐는 듯 미소로 변했다.
공연장 옆에 마련된 작은 대기실로 자리를 옮겼다. 네 명의 멤버, 매니저, 스타일리스트, 그리고 임씨와 기자. 임씨는 지방 공연이라서 오지 못한 스탭도 있다고 조금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새벽과 아침의 경계에 있는 시간이라 멤버들에겐 느슨한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긴 대기 시간은 어느새 일상이 됐고, 대기 시간을 즐기는 방법도 다양해졌다. 부족한 잠을 자는 멤버, 운동을 하는 멤버, 스타일을 점검하는 멤버. 대학생들의 공강 시간 또는 쉬는 시간에도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무대에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무대에서 내려온 그들은 우리와 별 다를 바 없는 20대 초반 남성의 모습 그대로였다.
리허설 무대를 찍은 작은 캠코더로 자체 모니터를 막 끝낸 임씨는 그제야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서울에서 평택까지 1시간이 넘는 거리를 직접 운전하고 왔으면서도 피곤한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배우 안재모, 가수 원투 등 유명 연예인의 전성기 시절을 함께한 그가 지금의 회사를 설립한 것은 2년 전이다. 함께 공연을 하며 자회사 설립의 꿈을 꾸게 한 것은 바로 그가 만든 기획사의 첫 작품, 밴드 BOB4다. 하지만 신생기획사가 으레 겪는 어려움도 많았을 터.
“우리나라 대중음악계는 특히 중소 기획사가 서기 어려워요. 매체에 얼굴과 노래를 자꾸만 노출시켜야 소위 뜰 수가 있는데 그게 신생 기획사에게는 제일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의 말에서 드디어 숨겨졌던 피곤함이 드러나는 듯 했다. 기자가 느낀 연예계의 첫 번째 이면이었다. 대형기획사에 가려지는 중소기획사. 그러나 “그래도 지금 이렇게 좋아하는 동생들과 같이 좋아하는 음악을 할 수 있는 게 행복하다”며 “이 산을 넘으면 지금보다도 더 큰 만족감이 기다리겠죠?”라고 자신의 일에서 얻는 피곤함보다는 만족감이 더 큼을 강조했다. ‘대중음악의 다양화’라는 꿈은 그가 달리는 원동력이 되게 한다. 이날 케이블 방송의 음악프로그램 오프닝을 장식한 밴드를 긴장되게, 또 만족스럽게 바라보는 임씨는 꿈에 한걸음 더 다가간 성취감을 느낀 듯하다.
두 번째 만남은 유도 선수들이 메달을 휩쓸던 지난 8월 3일,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기자를 마중 나온 임씨를 따라 들어간 곳은 경기도 안산시의 한 번화가였다. BOB4의 연습실이 있는 곳이라고 했다.
연습실에서는 공연장에서 미리 들어본 이들의 신곡 ‘Youaholic’이 아닌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울렸다. 그런데 익숙한 멜로디가 아니라 시원한 샤우팅이다. 이들의 주 무기는 뛰어난 편곡실력이다. 유명한 노래를 밴드 버전으로 편곡해 친숙하면서도 신나는, 그러면서도 자기 색을 내는 재주를 지녔다.
8월 중순에 일본 단독 공연, 9월에는 국내에서의 신곡 발표를 앞두고 있는 바쁜 일정 탓에 연습이 쉼 없이 진행됐지만 외부인(공연장의 PD, 작가 등)이 없어서인지 한결 편안한 분위기였다. 일주일 새벽의 절반 이상을 이곳 연습실에서 보낸다는 임씨와 멤버들은 피곤한 줄 모르고 연습에 몰두했다. 멤버들이 악기를 잡을 수 있게 하는 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아니라 자신들의 꿈이며 열정이라고 한다.
“드럼 소리는 조금만 작게 하고, 더 세게 불러줘.”
멤버들과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이 있다. 한 곡 한 곡이 끝날 때마다 4명의 멤버 개개인에게 피드백을 해주는 임씨가 그 사람이다. 전날까지도 방송국·언론사·유통사 사람들과 사흘 연속으로 술자리를 가졌다는 임씨를 달릴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은 역시 꿈이요, 열정이다. 그리고 매니저로서의 책임감이다.
“매니저는 종합적인 관리자입니다. 편한 친형이면서도 인생의 멘토, 때로는 음악적인 소통자와 트레이너의 역할까지 해야 해요.”
매니저의 다양한 ‘역할론’을 설명하는 임씨에게서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러나 “스타에 가려지는 것은 숙명이지만 스타에게 인정을 받는 것은 옵션”이라는 말에서 연예계의 두 번째 이면을 볼 수 있었다. 화려한 스타 뒤의 중간관리자. 스타에게 인정을 넘어 존경을 얻은 임씨이기에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절로 생기지 않았을까.
이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밴드의 연습은 계속 됐다. 임씨는 “연예계에 어두운 면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우리 애들처럼 연예계로의 진출을 꿈꾸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겠죠?”라고 연예계의 미래가 밝다는 점도 언급했다. 그리고 그 청춘들에게 “정말 ‘죽기’로 할 마음가짐이 돼있다면 자신의 능력을 타인에게 평가받는 게 중요해요, 제작자가 당신의 음악성을 제대로 평가할 겁니다”라는 따뜻하면서도 따끔한 충고를 잊지 않았다.
한여름이라서 그런지 해는 다른 날보다 일찍 고개를 내밀었다. 하나의 미니콘서트 같았던 그 날의 긴 연습이 끝나고 지하철 첫차의 지붕 위로 햇빛이 드는 시간, 로드매니저가 도착하고 BOB4는 또 다른 스케줄을 위해 이동했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그들에게는 차 안이 숙소가 될 것이다.
해가 내뿜는 밝은 빛은 그림자를 대동한다. 그리고 이러한 그림자 덕분에 해는 더욱 눈부시게 느껴진다. 그래서 이면이라는 말보다는 반쪽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기자는 연예계의 반쪽에서 조명보다 더 뜨거운 정(情)을 볼 수 있었다. 인정도 있고 열정도 있는 연예계가 조금은 정답게 느껴졌다.


 이호연 기자 hostory3253@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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