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기자석 - 강의계획서 출력해왔나요?
주간기자석 - 강의계획서 출력해왔나요?
  • 조수진 기자
  • 승인 2012.09.18 23:42
  • 호수 13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입학하고 듣던 첫 대학 강의, 교수는 분주하게 자료를 나눠줬었다. ‘강의계획서’였다. 그 교수는 “여러분들은 이제 더 이상 고등학생이 아닙니다. 각 수업마다 강의계획서는 자기가 챙겨봐야 해요. 하지만 첫 수업이니 강의계획서를 복사해왔어요”라고 말했다.

1년 반이 지난 지금, 2학년 2학기 첫 수업. 교수는 학생들에게 “강의계획서 출력해왔나요?”라고 질문하면서도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분주하게 자료를 나눠준다. 학생들도 자연스럽게 자료를 나눠 갖는다. 그리고는 교수가 묻는다. “강의계획서 모두 받았나요?”

학기가 시작되면 교수가 직접 ‘강의계획서’를 복사해오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본다. 기자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서인지 이상하다는 인식을 전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편집회의가 있던 토요일 오전, 김상천 편집장이 “강의계획서도 교수가 직접 준비해오는 모습을 보면 요즘 대학생들이 너무 수동적인 것 같다”며 떡하니 내놓는 기획 아이템을 들으며 순간 ‘아차!’ 싶었다.

기자는 1학년 첫 수업 때보다 좀 더 나이를 먹었고 나름대로 능동적인 삶을 추구하며 산다. 아니 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교 첫 수업과 2학년 2학기 첫 수업을 생각하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창피함이 밀려온다. 강의계획서를 뽑아간 횟수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니 더 이상 말해 무엇 하겠나.

점점 수동적으로 변하는 건 혼자뿐만이 아니다. 본보 1331호 ‘우리 대학 8개 지표는 안정권’ 기사와 이번호 ‘링크사업단’ 기사를 맡게 되면서 취업관련부처를 취재하게 됐다. 취업진로처 김주섭 처장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지만 학생들의 참여율이 낮다”며 “학생들이 자발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링크사업단 취업상담소 최형진 소장은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부족하다”며 “이번 학기부터 우리가 학생들을 직접 찾아가는 ‘멘토톡 제도’를 시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찾아가는…’ ‘전진 배치…’ 이런 단어들이 취업 프로그램을 수식하는 일이 늘고 있다.

우리 대학의 취업률은 53.4%내외다. 일반 대학 취업률 평균인 55.87%에 약간 못 미치는 수치다. 취업은 학생들에게 시급한 문제지만 스스로 찾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학교에서 턱밑까지 떠먹여주려 해도 학생들의 능동적인 참여가 없어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모 기업이 제시한 인재상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며 책임지는 사람 △자기개발을 향상 시키는 사람 △헌신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런 인재상을 원하는 기업이 과연 여기 하나뿐일까.

진로관련 필수교양을 듣는 1학년생부터 취업관련 교양을 들은 수많은 고학년들은 알 것이다. 사회는 말하기 전에 일하는 능동적인 사람을 원한다. 멀지 않은 미래에 취업해야하는 기자는 당장 내일 들어갈 수업의 강의계획서를 뽑기 위해 출력버튼을 누른다.

조수진 기자 ejaqh2@dankook.ac.kr 
조수진 기자
조수진 기자

 ejaqh2@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