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볼펜] 백색볼펜 휴무

마음에 드는 고기가 없어 오늘 하루 쉽니다 김상천 기자l승인2012.09.18l1322호 8면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 썼다, 지웠다. 거의 다 써놓고 그냥 다 지웠다. 이번 주 백색볼펜 주제를 부모와 학부모의 차이로 정해놓고 일주일 간 생각을 정리하고 자료를 모았는데, 폐기처분했다. 이렇게 뻔한 말을 이렇게 뻔한 형식으로 해서 무엇 한단 말인가, 하는 회의가 글을 다 지워버렸다. 정형화된 것들은 재미없다 정말. 넥타이를 졸라맨 듯 답답해보였다. 헬리콥터 맘과 캥거루 대디에 대한 아쉬움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휴지통에서 지워졌다. 나는 양치질을 하러 갔다.

◇ ‘마음에 드는 고기가 없어 오늘 하루 장사 쉽니다.’ 맛 좋기로 소문난 식당이 문을 걸어잠궈놓고 붙여놓은 쪽지가 저번 달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었다. 맛 좋기로 소문날 글도 못 쓰는 주제에, 뻔뻔하게 나는 오늘 하루 장사를 쉬려 한다. 그것도 대놓고. 아마 전국 뻔뻔한 대학신문 편집장 경연대회 같은 게 있으면 나는 최소한 4강 시드는 받아야 한다.

◇ 누가 중앙일보 대학생칼럼이라는 곳에 글을 한번 보내보라길래 어떤 글들을 쓰는지 들여다봤다. 과연, 글 잘 쓰는 학생들이 많았다. 근데 많이 읽진 못하겠더라. 너무 다 똑같이 써서 재미가 없었다. 페이지를 운영하는 논설위원은 참 지루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장난기가 발동했다. 저번호 백색볼펜, 갸루상은 이렇게 말했다를 보냈다. 이런 날라리 같은 글도 읽어주는지 모르겠다, 웃기려고 노력한 글이니 싣지 못하면 피식 한번 웃어나 주시라고. 내심 첫 문단만 보고 버릴 거라 생각했다. 오호라 근데 의외로 답장이 왔다. 그것도 재밌다고. 칼럼 선정엔 다른 학생들의 반응도 감안되니까 글을 올려달란다. 여기서 나는 좀 쿨한 척했다. 페이스북에 올리고 싶진 않다. 읽혔으니까 만족한다. 신문엔 잘 쓰는 다른 학생들 글이 실려야할 것이다. 답장을 보내고 나서 스스로 쫌 멋있다고 생각했다. 근데 또 답장이 왔다. 혼자 보긴 아쉽다고. 나는 못 이긴 척 갸루상을 올렸다.

◇ 그래서 글이 실렸느냐고? 에이, 만약 실렸다면 이렇게 대놓고 자랑을 하겠나. 그 정도로 뻔뻔하지는 않다. 갸루상보다 정돈되고 잘 쓰인 글이 그 주의 칼럼으로 뽑혔다. 실은 꾸준히 쿨한 척 했지만 좋아요가 많아지면서 나도 내심 스펙업! 취직업! 하는 거 아닌가 하고 설레긴 했다. 그래도 기분 좋았다. 평소 재밌게 읽던 강홍준 논설위원께 갸루상의 맨 앞 도입과 맨 끝 퇴장 부분만 좀 진중하게 갔으면 이번주 칼럼으로 선정하려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골 때리는 글을 진지하게 읽어줬다는 게 참 고맙더라. 왠지 죄송하기도 하고. 이 자리를 빌어 백색볼펜을 꾸준히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께도 저의 오두방정에 대한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 그러나, However, 이 일을 계기로 나는 또 다짐했다. 난 그냥 계속 좀 이상하게 살자. 왜냐? 재밌으니까. 또 사람들은 유치한 걸 좋아하지 않나. 나도 언젠가 강남스타일처럼 뜰 수 있지 않을까? 음 그건 아닌 거 같다. 

<칙>


김상천 기자  firestarter@dankook.ac.kr
<저작권자 © 단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상천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단대신문 소개디보이스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126번지  |  Tel : 031-8005-2423~4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안서동 산29번지 Tel : 041-550-1655
발행인:장호성  |  주간:강내원  |  미디어총괄팀장:정진형  |  미디어총괄간사:박광현  |  미디어총괄편집장:양성래  |  편집장:김태희  |  청소년보호책임자:김태희
Copyright © 2017 단대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