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사람들을 만나다 ⑨ 노량진 수산시장 사람들
새벽사람들을 만나다 ⑨ 노량진 수산시장 사람들
  • 김윤숙·이혜린 기자
  • 승인 2012.09.25 12:05
  • 호수 13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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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어만큼이나 생동감 넘치는 수산시장의 새벽

24시간 365일 노량진 수산시장은 불빛이 꺼지지 않는다

 성공을 위해 공부로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로 가득한 노량진 학원가. 학원가와 좀 떨어진 곳에 다른 이유로 밤을 새는 사람들이 있다. 입구부터 비릿한 바다 냄새가 나는 곳. 서울의 모든 수산물이 거쳐 간다는 노량진 수산시장이다. 왁자지껄 소란스럽던 거리에 조금씩 정적이 찾아올 때, 이곳은 낮보다 활기찬 새벽이 열리고 있었다.  <편집자 주>

새벽 1시 “경매시작”
 8월 27일 밤 11시. 경매물품인 각종 수산물이 트럭마다 가득 실려 들어왔다. 수산물을 옮기는 상인에게 “잠시 질문 좀 드려도 될까요?”라고 말을 걸자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지금 바쁘다”며 기자를 외면했다. 옆에 있던 상인은 “지금은 다들 정신없으니 나중에 찾아오라”고 말했다. 오후 6시부터 새벽 1시까지, 전국의 수산물들이 시장으로 들어오는  시간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상인들은 수산물을 생선트럭에서 내려 다시 어종별로 분류한다. 그동안 몇몇 노량진 수산시장 직원들은 경매를 위해 경매장과 그 주변을 정돈하고 상품들을 나열할 상자를 가지런히 놓는다. 경매의 진행을 알려줄 TV도 세팅한다. 운명을 직감한 듯 한 생선들은 상자에 담겨 몸부림을 쳤다. 자신들의 몸부림이 오히려 수산시장의 활기를 더해주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채.

경매 시간과 장소는 생선의 종류와 활·선어여부에 따라 나뉜다. 새벽 1시 패류 경매를 시작으로 2시에는 선어, 3시에는 활어를 경매한다. 아직 살아있는 활어와 이미 죽은 선어는 크기와 언제 죽었는지에 따라 가격차이가 천차만별이다. 활어의 가격이 더 비싸며 선어와 크게는 10배 정도 가격 차이가 난다. 어류 경매장 초입에선 8월 말이 끝물이라는 민어가 선홍색 핏물을 흘리며 상자에 담겨 있고 조금 더 들어가자 이제 먹을만하다는 광어가 얼음과 함께 상자에 담겨 있었다. 찬바람 불기 시작하는 10월이면 선보일 참붕어, 전어, 방어들도 간간히 보였다. 선어 경매장 옆에선 꽃게만을 경매하는 꽃게 경매장이 한창 준비 중이었다. 경매가 끝나는 시간은 그날 물량에 따라 다르다. 이르면 오전 6시에 경매가 끝나기도 하지만 아침 8시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제 시작합니다. 칠천! 민어 나왔습니다. 물 좋아요. 육천!”
 1시가 되자 경매사들은 독특한 소리를 지르며 경매를 시작했다. 그들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몽골의 전통음악 ‘흐미(Xoomij)’를 듣는 것 같았다. 기자는 경매사의 목소리만으로는 경매가 진행 중인지 끝난 건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경매사가 탄 차 위에 달린 전광판을 보며 상황을 어림짐작할 뿐이었다. 경매사의 맞은편에서 손을 번쩍번쩍 들고 생선을 챙겨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숫자가 적힌 모자를 쓰고 있었다. 경매사에게 수산물을 사서 소매업자에게 되파는 중도매인들이다. 중도매인들은 날카로운 눈으로 싱싱한 생선들을 골라냈다. 생선 상태를 눈대중으로 살피곤 수신호로 경매사에게 답했다. 2시에 시작한 선어 경매가 끝날 때쯤 중도매인들 사이에서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 다가가려 했지만 “이런 일엔 함부로 끼어들지 마라”며 옆에 서있던 중도매인이 기자를 말렸다.    

 노량진 수산시장의 소매업자들은 365일 쉬는 날 없이 수산물을 판매한다. 소매업자 최원열(57)씨도 마찬가지다. 최씨는 잠깐 손님이 끊긴 사이 경매를 보기 위해 기자들 옆에 섰다. 최씨는 “경매를 통해 도매인들에게 생선을 전해받기 때문에 경매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최씨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금방 선어 경매가 끝났다. 전반적으로 경매가 생각보다 빠르게 끝났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곧 다가올 태풍 때문에 물량이 적은 시기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요새는 불경기인지라 구매자들의 지갑열기가 힘들어졌단다. 그럼에도 “어디나 불경기가 아닌 곳이 없고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지 않냐”며 “오히려 열심히 살아가려는 새벽시장 사람들의 활기를 보며 힘차게 일하게 된다”는 최씨는 ‘활어’처럼 기운이 넘쳤다.

수산시장을 만들어 가는 경매사, 중도매인, 방문객
 선어 경매가 끝나고, 잠시 쉬는 동안 ‘44’가 적혀있는 모자를 쓴 전경환(60)씨에게 말을 붙였다. 전씨는 45년 경력의 중도매인이다. 모자의 번호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묻자 “모자의 번호표는 큰 의미는 없고, 수산시장에서 부여받은 번호다”고 답했다. 전씨는 “이곳의 모든 중도매인들이 적어도 20년 이상 일한 사람들”이라며 좋은 생선 고르는 법을 알려줬다. “우선 죽어 있는 것들은 비늘 색과 눈의 상태를 확인한다. 살아있는 상품의 경우도 비슷한데 힘없이 뒤집어져 있는가를 꼭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경매가 다시 시작될 기미가 보이자 시간이 없다며 바쁘게 자리를 떠났다.

 새벽 3시쯤 시장 끝에 자리 잡은 수산회사의 사무실을 찾았다. 그곳 역시 새벽 3시를 넘어가고 있었음에도 불이 켜져 있었다. 그곳에서 32년 동안 근무한 경매사 박선구(57)씨를 만났다. 박씨는 경매사와 경매 진행에 관한 기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줬다. “경매사마다 경매를 진행하는 방법이 다르다. 독특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중도매인들의 시선을 끌기도 하고 긴장감을 줘서 빠르게 경매를 진행하기 위한 것”이라며 “전자경매 TV화면과 마이크가 없었던 시절에는 산에서 고함을 지르며 소리 내는 법을 연습하곤 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산 속에서 목에 피가 나도록 연습했지”라며 그때를 회상했다. 경매사와 중도매인의 수신호를 묻자 “손가락 펼친 숫자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데 엄지는 가격 중 1에 해당하는 숫자이고,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을 펼치며) 이건 2에 해당하는 수신호”라며 손가락을 펼치며 하나씩 시범을 보였다. 경매사들은 일요일과 명절을 제외하곤 쉬는 날 없이 일한다. 쉴 틈 없고 낮밤이 뒤바뀐 생활이 피곤하지 않은지 묻자 그는 “이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냐”며 웃어보였다. “피곤한 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이 일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진 않는다”고 했다.  

 박씨와의 이야기를 마치고 수산시장의 여기저기를 구경하다 덩그러니 놓여 있는 저울이 눈에 띄었다. 이는 ‘자율 계량대’로 고객이 물건을 산 후 무게가 미심쩍거나 의심이 들 때 사용하는 셀프저울이라는 설명이 쓰여 있었다. 그런데 시장 곳곳에 넘쳐나는 사람들 중 누구도 이 저울에 크게 관심을 두거나 산 물건을 재보려고 하지 않았다. 소비자와 판매자는 생선뿐만 아니라 신뢰 역시 주고받는다는 의미 같았다. 하지만 흘깃 판매대 위의 생선을 쳐다보기라도 하면 “뭐 찾아요? 싸게 해줄게요”라 권하는 시장의 과한 친절은 다소 부담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이른 새벽시간임에도 노량진 수산시장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경매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며 구경하던 커플은 “횟집에서 술을 마시다 나왔는데 활기찬 분위기가 좋다”며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3명의 친구들과 함께 온 삼십대 남녀들은 “새벽의 수산시장은 활기차고 가격 역시 비싸지 않아 자주 애용하고 있다. 오늘은 친구들하고 대게도 사고 수산시장을 둘러본 뒤 맛있는 음식도 먹으려한다”고 답했다. 온 가족과 함께 온 방문객은 새벽시장을 방문한 것이 즐거운 듯 가족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생선가게하면 빠질 수 없는 고양이도 모습을 보였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듯 먹을 것 좀 달라는 것인지 기자들 주변을 어슬렁거리더니 사라져버렸다.

 취재를 모두 마친 5시 무렵 노량진 경매시장 역시 아침을 열 준비를 끝마치고 있었다. 팔딱이던 생선들도 이제는 얌전히 누워 소매상인들과 나란히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집으로 향하려는데 한 수산회사의 직원이 배고프고 지치지 않았냐며 물어왔다. 그리곤 낙지와 전복을 구해와 이를 라면에 넣고 대접해줬다. 뿐만 아니라 한 상자 가득담은 해물탕거리도 손에 쥐어줬다. 비록 새벽의 취재로 지치고 힘들었지만 활기찬 분위기와 정이 담긴 선물로 기운이 날 수 밖에 없었다. 노량진 수산시장은 이제 시작, 아니 이미 시작되었다.

김윤숙·이혜린 기자
김윤숙·이혜린 기자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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