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볼펜] 어르신
[백색볼펜] 어르신
  • 김상천 기자
  • 승인 2012.09.25 20:25
  • 호수 13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나라 노인자살률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는데


◇ 서울시가 앞으로 각종 공문서와 공식행사에 ‘노인’ 대신 ‘어르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로 했다. 노인의 늙을 로(老) 자가 부정적인 인식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어르신은 노인 대체 명칭 공모전을 통해 6월 중순부터 2주간 제안 받은 2046건 중에서 뽑힌 말이다. 나도 공모전에 관한 기사를 읽고 틈날 때마다 생각해봤지만 어르신 외에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시민 온라인 선호도 조사를 거쳐 행정용어순화위원, 시의원, 노인단체 관계자 등이 심의해 고른 말이 어르신인 것을 보니 아마 사람들 생각이 대부분 비슷했나보다. 시는 이와 더불어 노인복지관과 경로당도 각각 ‘어르신복지관’과 ‘어르신사랑방’으로 바꿔 부르기로 했다고 10일 밝혔다.

◇ 영화 <은교>에서 가장 애잔했던 장면은 노인인 이적요(박해일)가 꿈속에서 젊은 육체를 되찾던 순간이었다. 환희에 가득 차 젊은 육체로 푸른 숲을 마구 달리던 모습이 인상 깊게 남았다. <아바타>에서 하체불구자인 주인공 제이크 설리(샘 워싱턴)가 아바타의 몸에 처음 접속한 날 심장이 터질 듯 거침없이 내달리던 모습과도 꼭 같았다. 두 장면 모두 주인공이 육체의 속박에서 풀려 마침내 염원하던 자유를 만끽한 순간이었다. 보는 사람도 '박하사탕을 물고 운동장을 달리는 듯한' 상쾌함을 느끼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늙은 몸의 답답함은 불구자의 갑갑함과 닮게 그려질 정도로 속수무책의 고통인가보다.

◇ 작년 말에 성인콜라텍을 취재한 적이 있었다. 평일 5시 동대문구 답십리의 한 성인콜라텍은 이른 시간에도 성황이었다. 크리스마스를 연상케 하는 현란한 조명 아래 최소 100명 이상의 남녀가 짝지어 300평이 넘는 홀을 채웠다. 그런데 그중엔 의외로 7~80대 노인들이 많았다. 나는 그 이유를 다음날 송파구 천호동의 ㅇ콜라텍에서 알 수 있었다. 콜라텍 내 식당에서 냉면 한 그릇을 시켜놓고 네 분이서 나눠 드시던 김모(70)할아버지는 “경로당 갈 바에 운동 삼아 콜라텍에 오는 게 낫다”고 말했다. “자식들 부담 주기 싫어 집에는 잘 안 있는다”는 김 할아버지는 그전에는 공짜 지하철을 타고 서울에서 천안까지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이들에게 콜라텍은 싼 입장료(1,000원)를 내고 자판기커피 등을 마시며 돈 없이도 무료함을 달랠 수 있는 곳이었다. 매표소 종업원은 “50~8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오는데 토·일요일에는 200평 홀이 꽉 차는 편”이라며 “낮에는 특히 노인들이 많이 온다”고 말했다.

◇ 추석이 다가오는데 우리 집은 올해 어디 내려갈 계획이 없다. 집안 어르신들께서 한분 두분 돌아가시고, 홀로 남으셨던 외할머니마저 작년 말에 세상을 등진 후로 친척들이 한 번도 모인 적이 없다. 집안의 기둥이 없어졌음을, 그래서 실감한다. 새해 첫날 떡국 한 그릇을 더 떠서 말없이 상 위에 올려놓던 어머니께서도 그런 마음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노인자살률이 OECD국가 중에 가장 높다는데. 이 나라 기둥이 흔들리는 것은 아닌가 괜히 혼자 걱정해본다. 

<칙>

김상천 기자
김상천 기자 다른기사 보기

 firestarter@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