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볼펜] 가슴을 쫙 펴라

쩨쩨하게 굴지 말고 김상천 기자l승인2012.10.09l1334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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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국화는 명불허전이었다. 지난 주말 상암동 한강시민공원 난지지구에서 열린 14회 쌈지사운드페스티벌에 다녀왔다. 밤이 무르익었을 때 들국화가 무대에 올랐다. 꽤 쌀쌀한 바람이 불고 밤공기에서 풀냄새가 났다. 웃통 벗은 남자들과 야광 팔찌를 찬 여자들이 무대 앞으로 모여들고 할아버지 할머니 꼬마들이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걷기 대회 참가자들 몇 명이 가슴에 넘버를 단채 들국화를 보려고 담 넘어 들어왔다. 광장 밖을 지나가던 자전거들도 멈춰 섰다. 택시 기사들은 멀리 무대가 내려다보이는 계단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 들국화는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Another Bricks in the Wall’로 몸을 풀었다. 나란히 의자를 놓고 앉은 멤버들과 세션이 서로 좋아보였다. 무대가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밤공기 위로 ‘행진’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나의 과거는 어두웠지만… 나의 과거는 힘이 들었지만….’ 밤하늘에 울려 퍼진 전인권 목소리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우여곡절을 겪은 자의 감정이 선명한 목소리에 사람들은 몰입했다. 나도 깜짝 놀랐다. 한소절 한소절이 내가 모르는 어디 저 먼 곳에서부터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게 너무 신기해서 온 신경을 집중해서 들었다. 그런 목소리의 기원이나 정체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아마 좌충우돌 세월을 헤치고 도착하는 소리일 것이라 추측한다. 들국화는 이날 ‘그것만이 내 세상’, ‘제발’, ‘걱정 말아요 그대’, 등의 명곡들을 불렀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관객들이 많았다.

◇ 들국화는 관객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눠가며 노래했다. 전인권은 젊은 관객들에게 “나이 먹는 거 별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마”라고 말했다. 웃통 벗고 뛰노는 남자에겐 “춥겠다. 술 먹어”하고 말했다. “요즘엔 95살까지 산다니까 2년 일찍 죽는다 생각하고 좀 마셔도 돼.” 들국화 1집의 나이보다 어린 것이 분명해 보이는 그 관객은 전인권에게 “마약하지 마!”라고 소리쳤다. “고마워.” 진짜 고마운 목소리로 전인권이 답했다. 어렵게 명맥을 이어가는 국내 최장수 음악페스티벌 쌈싸페의 14번째 해를 축하며 다 같이 박수도 쳤다. 10대 20대 관객들도 모두 다 들국화 노래를 함께 불렀다. 전인권은 마이크를 자주 넘겼다. 편안하고, 편안한 밤이었다.

◇ 사람들은 앵콜을 호소했다. 꺼진 조명에 다시 불이 들어오는가 싶더니 앵콜곡으로 딥 퍼플(Deep Purple)의 ‘Smoke on The Water’가 흘러나왔다. 관객들은 “Fire in the sky!”를 외쳐가며 환호했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들의 어깨를 붙잡고 기타리프를 떼창해가며 기차놀이를 했다. 이어진 마지막 곡은 ‘사노라면’이었다. 들국화는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 관객들에게 ‘쩨쩨하게 굴지 말고’를 6번 반복했다. 쩨쩨하게 굴지 말고, 쩨쩨하게 굴지 말고, 쩨쩨하게 굴지말고, 쩨쩨하게 굴지말고, 쩨쩨하게 굴지말고, 쩨쩨하게 굴지말고, 가슴을 쫙 펴라고 했다.

<칙>


김상천 기자  firestarter@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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