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손님 저손님 각양각색이네?
이손님 저손님 각양각색이네?
  • 김경민 기자
  • 승인 2012.10.16 13:33
  • 호수 1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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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간짬뽕 시키는 ‘간짬뽕 커플’, 개를 꼭 무릎에 앉혀놓고 게임하는 ‘강아지녀’ …별의별 손님 다 있어요”

 

▲ 새벽 거리를 밝히는 간판 불빛.

 
8일 새벽 3시. 한낮의 더위를 식혀주던 아이스크림 가게도, 직장인들의 따뜻한 점심을 책임졌던 감자탕집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팔던 까페도 모두 문을 닫아 어두워진 약수역 사거리는 한층 더 쓸쓸해 보인다. 편의점, 국밥집, 크고 작은 포차들… 그리고 피씨방만이 아슬아슬하게 거리의 온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낮에 거리를 가득 메우던 사람들이 찾아 들어간 곳이 집 뿐만은 아니다. 새벽녘의 피씨방에는 온갖 사연들이 찾아든다. <편집자 주>

“어서오세요!”
늦은 시각에 지칠 법도 한데 아르바이트생은 듣기만 해도 힘이 나는 목소리로 반갑게 인사했다. 지하에 위치한 피씨방의 내부는 생각처럼 탁하지 않았다. 알바생 박대영(20)군은 “우리 피씨방은 기존의 피씨방과는 달리 까페처럼 쉬고 가는 공간을 지향하고 있다”며 “컴퓨터를 이용하는 것은 물론, 커피와 각종 음료, 먹거리까지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 여러 가지를 물어보려 했지만, 금세 들려오는 호출 소리에 박군은 바삐 걸음을 옮겼다. 그러더니 곧 만원짜리 한 장을 쥐고 바쁜 걸음으로 돌아왔다. 박군은 “저 손님 항상 이 시간에 짜파게티 두 개를 한 냄비에 담아달라고 주문한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라면은 끓이고, 설거지까지 해야 되다 보니까 다른 주문보다 손이 많이 가요. 마음만 같아서는 나가서 사먹으라고 하고 싶다니까요.” 말은 불평이었지만, 역시 손님들에게 맛있는 라면을 만들어주는 것도 그였다. 냄비에 물을 올리던 박군은 “한번은 너무 힘들어서 라면기계가 고장났다 하고서 주문을 아예 안 받았다”며 “기자님만 아시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 피씨방에는 120여개의 좌석이 있었다. 놀랍게도 늦은 시간에도 절반이 넘는 자리가 사람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또 아직 손님들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만큼,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볼 수 있다고 박군은 말했다. “항상 보는 사람들도 있고, 새로 오는 손님들도 있고… 자주 오시는 손님들하고는 또 친해져서 얘기도 나누고 밖에서 아는 체도해요. 이 주변에 피씨방이 거의 없다 보니까 웬만한 사람들은 한번쯤은 여길 들르게 되어있어요.” 또 박군은 “가끔은 길을 걷다 보면 기억도 안나는 손님이 인사를 건네올 때도 있어 부끄럽다”며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여러 사람들이 오가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손님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에 박군의 경험담을 들어봤다.

▲ 손님들로 가득한 피씨방.

- 알바생보다 피씨방에 더 오래있는 VIP손님
“일하다 보면 정말 자주 보는 손님이 계세요. 언제는 제가 출근할 때부터 계셨는데, 일이 끝나고 다음 날 다시 출근할 때도 여전히 계시더라고요.”
피씨방 손님들의 정보, 이름과 전화번호, 생년월일은 모두 메인 서버에 저장돼 있어, 손님들이 그동안 어느 정도의 금액을 피씨방에 지출했는지 알 수 있었다. 2년 조금 넘게 운영해 온 매장답게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정보가 입력돼 있었다. 10만원 조금 넘게 사용한 손님이 있는가 하면, 수백만원을 쓴 사람도 있었다. 이 매장은 그 동안 이용한 금액과 피씨방에 온 횟수에 따라 손님을 VIP로 지정하며 따로 관리한다고 했다.
“다른 손님들에게도 물론 친절하지만, VIP들에겐 조금 더 신경을 써요. 오셨을 때 미리 자리를 확보해둔다거나, 음료를 시켰을 때 얼음 컵과 빨대를 갖다드리는 정도에요. VIP손님들은 또 대부분 착하셔서 좋아요.”
마침 매장에 ‘떠오르는’ VIP손님이 있다고 해서 말을 붙여봤다. 놀랍게도 젊은 여자 손님이었다. “지난 학기에 휴학하고 나서 시간이 남더라고요. 그래서 피씨방에 들러 게임을 하는 게 일상이 됐어요.” 송다교(21)양은 RPG게임을 하며 하루의 대부분을 피씨방에서 보낸다. 이렇게 늦게까지 게임을 하고 나면 밤길이 무섭지 않냐는 말에, “그 전에 집에 들어가거나 아니면 밤을 새서 그렇게 느낀 적은 없다”고 답했다. 지난 3월에 가입해 현재까지 사용한 PC금액은 92만원. VIP로 꼽힐 법하다.

- 일 벌려놓고 나몰라라… 진상 손님
알바생들과 친하고 그만큼 편하게 해주는 손님들이 있다면, 알바생들을 일하기 싫게 만드는 진상 손님들도 있다. “24시간 영업이다 보니 술 취해서 들어오는 손님들도 많아요. 그런 손님들은 상태를 봐서 다른 손님들에게 피해가 안가도록 조용히 내보내지만 언성을 높이시는 분들도 많아요. 전 아르바이트생이라 그런 손님들이 계시면 더 난감해요.” 하소연 하는 박 군은 자신이 겪었던 여러 손님들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일하다보면 정말 ‘똥오줌 못 가리는 분들’이 계세요. 아니, 정말로요. 매장 입구에 볼일을 봐 놓고 도망가 버려요. 한번은 화장실 청소를 하러 들어갔더니 소변기에 누가 다른 볼일을 봤더라고요. 정말 CCTV 돌려보고 싶었는데….” 그 외에 화장실에 ‘빈대떡’을 부쳐 놓는 손님, 음료를 자판에 엎지르고 조용히 자리를 옮기는 손님, 과자를 그냥 먹고 서비스인줄 알았다는 손님 등 끝도 없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호출 소리에 말이 끊길 때까지 하소연은 계속 이어졌다.

- 알바생들이 별명을 붙여준 특색있는 손님
한 남자가 들어서자, 박군의 태도가 변한다. 하던 일을 제쳐두고 인사를 하며 곧바로 자리를 안내한다. 들어선 남자는 웃으며 안내한 자리로 향했다. “저 분이 마초남이에요 마초남.” 다른 손님을 대할 때와 다른 태도에 의아해하는 기자에게 박군이 귀띔을 해줬다. 저 남자가 일명 ‘마초남’으로 불리우는 VIP라는 것. 친절하게 웃기까지 한 그 남자가 왜 마초남인 걸까? 마초남이 향한 자리를 치우고 온 박군이 궁금증을 해소시켜 줬다. “저분은 게임하다 결과가 자신의 마음에 안 들면, 금세 험악해져요. 그게 다 우리한테 돌아와요. 자신이 기분 나쁜 걸 숨기지 않고 직설적으로 내뱉는다고 해서 점장님이 마초남이라고 별명을 지었어요.” 그렇다면 본인은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 기자가 인터뷰를 시도해 보려 했으나, 게임이 안 풀리는지 인상을 쓰고 있는 남자를 보고는 박군이 곧바로 기자를 말렸다. 매출에도 지대한 공을 세우는 손님이라는 말에 더 이상 인터뷰는 시도해 보지 않았다. 이외에도 항상 아침시간에 간짬뽕을 시키는 ‘간짬뽕 커플’, 개를 데리고 들어와서 무릎에 앉혀놓고 게임만 하는 ‘강아지녀’, 분명 나이가 많아 보이는데 아르바이트생을 부르는 호칭은 ‘오빠’인 ‘변기수녀’까지. 특색 있어서 더욱 기억에 남는 손님들이다.

박군은 말했다. “지금 재수를 준비하고 있어요. 대학은 무조건 나와야 된다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여기서 일하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 경험하면서, 대학이 과연 필요한 것일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 곳 점장님 또한 대학교를 자퇴하고 정말 발로 뛰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에요. 사람들이 ‘피씨방 점장’이라고 말하면 웃겠지만, 얼마 버는지 들으면 깜짝 놀랄 거에요. 피씨방 하나로도 이렇게까지 성공할 수 있는 걸 보면 세상엔 대학 안 나와도 노력으로 안 되는 일이 없겠다 싶어요.”

어느덧 시간은 새벽 6시를 가리키고, 차가웠던 바깥 거리도 조금씩 활기를 찾아갔다. 손님들도 다시 시작되는 일상 속으로, 지친 발걸음을 옮겼다. 매장이 한산해지자 박군도 청소를 시작했다. 박군의 얼굴에도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박군은 “밤 새워 일하고 나면 정말 피곤하다”고 말하며 돈을 벌어가며 공부를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야간에 일을 해야 낮에 공부할 수 있다고 했다. 이왕 시작한 공부니까 잘 마무리해야 한다며 웃음을 잃지 않는 박군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또다시 피씨방에는 아침이 찾아온다.

▲ 청소를 하는 박대영(20)군.

어릴 적, 학원이나 학교를 땡땡이치고 가는 곳. 나쁜 이미지로만 기억되던 피씨방도, 색안경을 벗고 바라보니 하나의 쉼터였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저마다 피씨방을 찾는 이유가 있다. 그 곳에는 오가는 사람만큼 많은 온기가 있었다. 때로는 학업에 지치고, 때로는 일상에 치여 휴식을 찾고 싶을 사람들. 피씨방은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담배연기와 기침소리, 기계음과 먼지가 함께하는 이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편안한 휴식의 공간이었다.

김경민 기자 ehreh1213@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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