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시의 부흥
68. 시의 부흥
  • 이호연 기자
  • 승인 2012.10.16 23:10
  • 호수 1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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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돌아왔다, 정말?
‘서로가/소홀했는데//덕분에/소식듣게돼’
소중한 이들 사이에 오고 가는 편지를 연상케 하는 짧지만 따뜻한 시다. 그러나 이 시는 편지와 거리가 멀다. ‘인터넷 시인’ 하상욱의 무료 단편 전자시집 『서울시』(2012, 도서출판 小小)에 수록된 시 ‘애니팡’의 전문이다. 소셜 게임이라는 시와는 어울리지 않는 소재지만 유쾌한 공감을 이끌어낸다. 이 가을에 오랫동안 EBS 참고서 속에서 잠자고 있던 시는 더 이상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서점에서도 시집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지난 9월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시집 판매액은 전월의 8배인 3억원이 넘는다. 시의 전성기였던 1980년대 이후 점차 시들어가던 시의 명맥은 30년이 지난 지금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서점 전역에서도 ‘시의 부흥’이 이뤄지고 있다. 몇몇 시집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많은 서점은 시 섹션을 부활시키고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배치한다.
표면적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시집은 소설책이나 자기계발서보다 얇기 때문에 빨리 읽을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하다. 시집의 시간적, 경제적 이점은 바쁜 현대인에게 적합한 조건이다. 각종 매체의 공도 크다. 많은 사람들은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2005)에서 김선아와 현빈의 사랑을 이어준 류시화 시인의 시집,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2005)을 기억할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는 좋은 시를 발견하는 하나의 방법이 되기도 한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은교>와 한창 방영중인 시트콤 <엄마가 뭐길래>의 중요한 캐릭터는 시인이다. 그들이 낭독하는 시와 소품으로 활용되는 시집은 관객과 시청자들에 의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렇다면 판매액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금 추세에 맞는 베스트셀러는 어떤 시집일까. 김재진 시인의 『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할 때』, 류시화 시인의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은 모두 ‘힐링’의 의도로 쓰인 시집이다.
만해 한용운 선생은 시를 밥상의 양념과도 같다고 말했다. 시를 읽고 쓰는 행동은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치를 위한 활동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생존을 위해 시를 읽고 있는 것 같다. 서점의 시 섹션에는 여전히 사랑과 한이 없다. 공감과 치유를 다룬 시집뿐이다. 가을을 맞아 시가 돌아온 것이 아니다. 삭막한 현대사회에 적합한 시가 새로이 등장한 것뿐이다.
사실 이러한 시집의 경향과 현대인들의 구매심리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작은 시집으로 정서를 돌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시집이 고맙기도 하다. 그러나 위로라는 명목으로 뻔한 내용을 다룬, 자기계발서와 다를 바 없는 시집만이 계속 등장한다면 그게 과연 의미 있는 ‘시의 부흥’일까? 시가 제대로 된 제2의 전성기를 맞으려면 ‘진짜 시’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이호연 기자 hostory3253@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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