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도읍과 새 수도를 잘 다스려 사방을 제어한다
옛 도읍과 새 수도를 잘 다스려 사방을 제어한다
  • 김철웅 연구교수
  • 승인 2012.10.17 00:03
  • 호수 13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2. 김이재의 『송경지(松京誌)』


62. 김이재의 『송경지(松京誌)』


옛 도읍과 새 수도를 잘 다스려 사방을 제어한다

 

▲조선후기의 개경 부근 지도.


 

 

 

 

 

 

 

 

 

서울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가까이는 조선의 수도로 한성, 한양이라 불렸고 고려 때에는 남경이라 하였다. 그리고 일찍이 백제가 이곳에 첫 도읍을 삼았던 유서 깊은 곳이다. 이런 역사성으로 인해 서울이 갖는 의미는 다른 지역에 비할 바가 아니다. 지난 정권에서 행정수도를 두려다가 반발에 부딪히고, 판결에서 우리 법 체계에는 없는 관습법 운운하며 서울을 고수한 것도 서울이 갖는 특별한 의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서울을 오로지 하나만 둔 것이 아니었다. 고려가 삼경을 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조선에서도 서울과 함께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을 중시했다. 조선은 한성부와 격을 같이 하는 개성부를 두었으며 개성을 송도(松都), 중경(中京), 송경으로 불렀다. 이에 조선에서는 개성의 역사와 문화를 책으로 계속해서 편찬했는데, 그 중 하나가 『송경지』이다. 『송경지』는 1824년(순조 24)에 개성유수로 있던 김이재(金履載)가 이 지역 사람이 지은 『중경지』, 그 이전에 완성된 개성의 읍지 등을 두루 참고하여 수정 보완한 것이다. 『송경지』 서문에, “옛 도읍과 새 수도를 다 편안히 다스렸으니,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사방을 제어하여 왕이 있는 서울을 보위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여 개성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개성에 관한 역사를 본격적으로 정리한 것은 김육(1580~1658)이 완성한 『송도지』였다. 김육은, “송도는 오백 년 동안 임금이 나라를 다스린 대업이 있었던 땅이다. 그러나 수차례의 전쟁으로 증거할 만한 문헌이 없고 옛 자취를 물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조신준(1573~?)이 지은 『송도잡기』와 『여지승람』의 기록을 모아 책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이후 이 『송도지』를 바탕으로 계속 증보하여 『송경지』라 하였다.

 『송경지』는 1824년에 김이재가 수정 보완하였으나 미처 간행하지 못하였다가 1830년에 개성유수로 부임한 서희순이 이를 다시 보충하여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책 서두에는 정약용이 김이재를 대신해 지은 『송경지』 서문이 있고, 이어 이전에 간행되었던 책들의 서문과 발문을 실었다. 김육의 『송도지』는 『송경지』에서 『송경구지(松京舊誌)』라 하였다. 이어 목록과 범례가 있는데, 범례에서 간행 사실을 간략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각 조목 아래에 출처를 다는 원칙을 밝혀 놓았는데, ‘원(原)’, ‘속(續)’, ‘증(增)’ 등으로 구분하였다.


『송경지』는 모두 10권 5책으로 되어 있다. 권1은 고려 태조부터 시작하여 조선 순조 시기까지 개성과 관련된 사건을 모아놓았고 권2에는 연혁과 물산, 풍속 등을 실었다. 여기에 편찬 당시의 개성 인구가 47,776명이라고 밝혀놓고 있다. 권3은 산천과 명승지, 권4는 학교, 권5는 궁전과 관아, 권6은 제도, 권7은 유적지 등을 기록했다. 8권부터 10권까지는 충신, 효자 등의 주요 인물과 과거 급제자, 개성의 전직 관료들을 수록하였다. 개성의 인물로 서경덕, 한석봉 등을 소개했는데, 한석봉은 집이 가난해 종이를 살 수 없어서 돌다리, 항아리에다 글씨 연습을 했다고 기록했다. 특히 고려 멸망기에 충절을 지켰던 포은(圃隱), 도은(陶隱), 야은(冶隱) 등 ‘팔은(八隱)’을 소개하고 있다. 포은 정몽주는 고려를 위해 죽음을 맹세하며, “사는 것은 잠시요 죽는 것이 영원한 것이니 비록 내가 홀로 죽어서 우리 왕이 계시는 뜰에 돌아갈 것이다.”라고 고려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였다. 이렇게 인물을 강조한 것은 특별한 의도가 있었다. 서문에서, “우리 나라가 태평한 정치를 하던 초기에 이름 있고 어진 신하는 모두 개성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비록 훌륭한 재주가 있고 어진 선비라 하더라도 개성 사람이라고만 하면 억압하고 배척을 받아 등용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렇듯 김이재는 이 책을 통해 개성 출신 인물들의 훌륭함을 드러내려 하였다. 한편 이 책은 개성의 유적과 풍속 등을 정리한 좋은 자료이다. 예를 들면 “정월 15일에 어린 아이들이 횃불을 들고 달에 일 년의 복을 빈다.”, “5월 5일 단오에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남자들은 씨름을, 여자들은 그네 놀이를 하였다”고 한다. 
김철웅(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김철웅 연구교수
김철웅 연구교수

 kim9963@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