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천만 영화의 꼼수
70. 천만 영화의 꼼수
  • 이호연 기자
  • 승인 2012.11.13 15:47
  • 호수 13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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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영화, 요즘 트렌드는 대형 배급사?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들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우선 천만 영화의 시초인 <실미도>(2003)와 <태극기 휘날리며>(2004)는 모두 우리나라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이후의 <괴물>(2006)과 <해운대>(2009)는 한국형 재난 블록버스터다. 이후 3년간의 정적을 깨고 올해 천만을 넘긴 두 영화 <도둑들>(2012)과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는 대기업에 버금가는 배급사가 뒤에 있다는 점 때문에 구설수에 올랐다. 억지로 만든 천만 영화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홍보 및 마케팅 비용이 어마어마했던 탓이다. <도둑들>의 S배급사는 30억, <광해, 왕이 된 남자>의 C배급사는 50억 원을 투자했다.
대형 배급사의 막대한 홍보비용은 천만이라는 숫자 뒤에 느낌표 대신 물음표를 찍게 만들었다. 자본이 있기에 개봉 전부터 상영관 수를 억지로 늘렸을 것이다.
개봉 초기에는 SNS를 통해 의도적인 입소문을 널리 퍼뜨리고, 어느 정도의 손익분기점을 넘자 온갖 사이트에서 이벤트를 통해 할인 또는 무료 티켓을 제공했다. 개봉한 지 오랜 기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상영관을 꿰차고 있거나, 일부 소셜커머스는 특정 영화에만 적용되는 할인 티켓을 판매하는 등 실제로 ‘꼼수’가 많이 활용됐으니 비난을 피할 길이 묘연해보인다.
특히 올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피에타>(2012)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은 직접적으로 배급사의 꼼수 행각을 폭로했다. “대형 배급사의 극장 독점이 영화인들을 억울하게 만든다”며 지속적으로 C배급사를 겨냥한 발언을 하고, <광해, 왕이 된 남자>가 15관왕을 차지한 대종상 영화제에서는 불편한 마음만 가득 안고 시상식 도중에 먼저 자리를 뜨기도 했다. C배급사는 홍보비용의 8배인 400억 원의 순이익을 챙겼다.
세계적인 감독이 국내의 트로피가 아쉬워서 이런 행동을 했을 리는 없다. 지금 영화계에서는 900만 영화도, 100만 이하의 영화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공교롭게도 두 경우 모두 대형 배급사 때문이다. 대형 배급사의 영화는 관객 수 850만을 넘는 순간 수월하게 천만으로 진입한다. 천만 영화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한 꼼수의 절정 단계에 이르기 때문이다. 반대로 소규모 자본의 영화는 관객 수 100만도 채우기 어렵다. 대형 배급사가 자리를 내주지 않는 덕분에 기본적인 상영관과 상영 기간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형 배급사의 횡포는 ‘영화계의 다양성 부족’에 대한 염려를 하게 한다. 많은 사람들은 옆 사람이 재미있다고 한 박스오피스 1위 영화, TV 광고와 인터넷 배너에서 예고편으로 자주 봤던 익숙한 영화를 찾는다.
천만 영화의 등장도 중요하지만 영화계의 다양성도 중요하다. 보다 다양한 영화가 있는, 선택하는 재미가 있는 극장을 만들기 위해서 대중의 관심보다도 대형 배급사의 양보가 필요한 때다.
이호연 기자 hostory3253@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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