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부에의 권유
[사설] 공부에의 권유
  • 단대신문
  • 승인 2012.11.14 15:22
  • 호수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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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위해 사회는 청년세대에 많은 기대를 건다. 그 중에도 특히 대학생들에게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사회의 미래는 물론, 스스로의 미래에 대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지식의 훈련을 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대학교육에서 수준과 내용을 갖춘 지식의 전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대학에서 온전한 의미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가장 큰 이유는 교육, 즉 공부의 뜻이 크게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험을 위한 공부, 취업을 위한 공부 이외에 교육과 공부는 거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공부란 무엇이며, 공부를 왜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시험성적 올리기 위해서’,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서’ 이상의 답변을 선생이나 학생 모두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문제의 가장 큰 책임은 사회구조에 있다. 한국 사회는 학생들로 하여금 성적을 위해, 스펙을 위해, 취업을 위해 일로 매진 할 수밖에 없도록 강제한다.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기에 한 번 실패하면 대체로 재기불능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십상인 이곳에서 젊은 청년들의 삶은 불안하고 고통스럽다. 이들이 공/대기업 취업에, 공무원에, 전문직에, 정규직에 목을 매는 이유도 미래를 제대로 기획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모님 또한 자식의 앞날을 위해 기를 쓰고 자녀교육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 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문제를 푸는 데에만 익숙하게 하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스펙쌓기에만 주력토록 하는 것은 결국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인간집단을 키워내는 일이다. 저항할 줄 모르거나,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는 인간군상을 키우는 것이 체제의 안정적 유지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득권자들은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짧은 생각이다. 중장기적으로 이는 개인은 물론 사회 전체의 역량을 갉아먹는 일이다. 이미 한국사회에서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으며, 세대를 가리지 않는 놀라울 정도로 높은 자살률.

그러나 구조에 책임을 미루면서 악순환의 현실고리에 매몰되어 있는 한, 개인도 사회도 보다 나은 미래를 도모하기는 어렵다. 안전주의자로 몸을 사리면서, 실리적 가치에 매몰되어 특별한 사유의 능력을 갖추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는 것은 아닌지, 젊은 청년들 스스로 성찰해보아야 한다. 토익, 상식, 자기소개서, 수상경력, 해외연수 등등. 이런 것들은 공부가 아니다. 흔히 인용되는 말이지만 공부는 습속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자유에의 도전이다. 이 가을 진정한 의미의 공부가 무엇인지 모두 크게 생각해볼 것을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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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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