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볼펜] 한글 참 좋다

아름다운 우리의 情문화 키운 한글 김상천 기자l승인2012.11.13l1337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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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9일 한글날이 22년 만에 다시 공휴일이 됐다. 한글날은 노태우정부 시절이던 91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됐었다. 10월에 공휴일이 너무 많다는 이유였다. 10월 1일 국군의날도 이때부터 공휴일이 아니게됐다. 당시 문화부장관이던 이어령씨가 들고일어섰지만 소용없었다. 우리 언어를 기리는 날에 경제를 들이미는 사람들과 ‘말’이 통할 리가 없었을 것이다. 먹고 사는 게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던 때였으니까 개천절까지 공휴일이 셋이던 10월 초가 걸리적거리기는 했을만하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한글날을 뺄 생각을 했을까.

◇ 언어 외적 현실은 없다는 말이 있다. 거칠지만 얄짤없는 진리다. 19세기 구조주의 언어학자들이 언어의 개념을 재정립한 이후로 이제는 언어에 대해 얘기하지 않고는 무언가를 논의하는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세상 모든 것은 결국 언어다. 랑그니 빠롤이니 어려운 말 쓰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그 사실을 다 알고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꽃’이라고 불러 주면 비로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는 것이다. 정치·경제·사회·종교·문화… 모든 이데올로기 싸움은 결국 개념어 싸움이다. 언어와 이데올로기는 탄생과 죽음을 함께 한다. 새로운 말이 생겨나는 순간이 새로운 개념, 사상, 이데올로기가 퍼지는 출발점이다. 반대로 더 이상 어떤 말이 쓰이지 않게 되면 이데올로기도 곧 잊혀진다. 모든 과거 역사도 결국에는 고작 몇 줄의 언어로 남게 마련이다.

◇ 나는 우리나라만이 가진 독특하고 아름다운 정(情)문화도 한글이 키웠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웃을 챙기며 어울려 살아왔다. 서로 챙겨주다보니 나중에는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눈치만으로 웬만한 건 다 통하게 됐다. 그런데 이런 성질을 한글에서도 볼 수 있다. 이건 어디서 주워들은 말인데, 한글 문장은 종종 주어나 목적어가 없어도 괜찮다. I love you 주어 동사 목적어가 분명해야하는 영어와 달리 우리는 그냥 “사랑해” 한마디면 끝난다. 이렇듯 주어와 목적어를 생략하는 일이 많은 한글은 읽을 때도 은연중에 주변 ‘이웃들’을 파악하고 눈치를 봐가며 읽지 않으면 이해가 안 된다. 문화가 언어로, 언어가 문화로 서로 뫼비우스의 띠를 그린다.

◇ 이렇게 상대 기분에 민감하고 서로 배려하는 문화가 예쁘게 자라서 정이라는 형태로 발전한 것이 아닌가 한다. 오죽했으면 미운정까지도 들겠는가. 외국인들은 죽었다 깨나도 이 미운정을 이해할 방법이 없다. 개인을 중시하는 영미권에서는 자신(I)을 대문자로 쓴다. 자신은 세상 유일무이한 존재기 때문이다. 자신과 타인을 동시에 말할 때 타인을 먼저 언급하는 문법을 만든 것도 역설적으로 개인을 중시하는 풍토가 강했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를 배려하는 게 당연한 우리는 그런 문법의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새삼스럽지만 우리문화도 우리말도 참 아름답다. 이런 우리말을 기리는 날이 공휴일인 것은 당연하다. 왜냐고? 하루 쉬어야 사람들이 한글의 고마움을 더 잘 알 것 아닌가. 

<칙>


김상천 기자  firestarter@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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