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탐구생활 ㉗예술제본가 렉또베르쏘 조효은 대표
직업탐구생활 ㉗예술제본가 렉또베르쏘 조효은 대표
  • 조수진 기자
  • 승인 2012.11.17 00:23
  • 호수 13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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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과 바늘로 책에 새 생명 불어넣는 문화의 전달자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시대에 따라 옷차림, 생활, 경제 모두 달라진다. 그러나 책은 다르다. 책은 전해진다. 100년 전, 200년 전 모습 그대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렇게 우리가 몇 백 년 전 책을 볼 수 있는 이유는 책을 보존하는 ‘예술제본가’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책에 새 생명을 불어넣고 있을 렉또베르쏘 조효은 대표를 지난 10일 오후 홍익대 근처 그녀의 공방에서 만났다.  <편집자 주>

 


문화의 전달자. 조효은(33) 대표가 ‘예술제본가’를 표현한 말이다. 예술제본가는 보관할 가치가 있는 책을 보수·복원하는 일을 한다. 실과 바늘로 직접 책을 꿰매고 다듬어 아픈 책에 새 생명을 불어 넣는 ‘의사’라 불리기도 한다.

그녀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대학교 1학년 때 우연히 본 TV프로그램 때문이다. “휴학을 했는데 프로그램에 나왔던 제 스승이신 故백순덕 선생님이 계속 떠올랐어요. 경험삼아 해보자는 생각으로 선생님을 찾아갔죠.” 그 후 그녀는 대학에 다시 돌아가지 않고 예술제본가의 길을 걷게 됐다.

처음 시작한 예술제본가의 환경은 너무 열악했다. 이 직업이 한국에 막 생겨나기 시작한 단계이기 때문에 국내에서 재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또한 예술제본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자리 잡히지 않아 겪는 어려움도 컸다. “왜 이런 일을 하느냐”는 말도 수차례 들어야만 했다.

환경뿐만 아니라 실제 예술제본의 과정도 어렵고 복잡했다. 조 대표는 예술제본을 ‘건축’에 비유했다. 건축처럼 예술제본도 제본할 책을 한 장 한 장 분해해서 연결하고 실과 바늘로 직접 꿰매는 등 다양한 과정을 단계별로 진행한다. 또한 가치 있을 책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최소 1개월에서 3개월의 시간이 걸린다. 그녀는 “과정 하나하나가 굉장히 세밀한 작업”이라며 “같은 작업을 오랜 시간 하다 보니 ‘여기만 시간이 멈춰있는 것 같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려운 만큼 느끼는 보람도 크다. 그녀는 한 일화로 노신사와의 인연을 소개했다. “몇 년 전, 한 70대 노신사 분이 괴테의 <파우스트> 초판본을 제본해 달라고 찾아오셨어요. 희귀본을 작업하는 것도 영광인데 예술제본의 가치까지 알아 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이외에도 조대표는 어린 시절 TV로 봤던 머털도사 콘티를 제본하거나 연애편지를 책으로 엮는 일까지 다양한 사람을 위한 특별한 제본책을 만든다.

이렇게 조 대표처럼 공방을 운영하면서 희귀본 보수·복원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고 박물관·도서관에서 고서를 복원하기도 한다. 조 대표는 “작가, 일러스트 작가, 인쇄공 등 모든 사람들의 노력을 책으로 후대에 전하는 ‘문화의 전달자’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녀가 이 직업을 하면서 반드시 지키는 신념이 있다. 바로 “책이 판단기준의 우선순위”라는 것이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책의 보전성을 떨어뜨리거나 책 본질에 맞지 않는 요구는 거절한다. “돈을 100배를 준다고 해도 책을 일주일 안에 만들어 달라는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아요. 짧은 시간 안에 제대로 된 책을 완성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조 대표는 예술제본가가 되기 위해서는 ‘인내심’과 ‘끈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밀한 작업이 많고 작업 하나에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하기 때문이다. 또한 책 하나를 제본하기 위해서는 그 책의 내용, 특성을 모두 파악해야하기 때문에 인문학적 소양도 요구된다. 무엇보다도 책을 좋아해야한다. 하루 종일 책과 씨름해야하는 만큼 책을 좋아하지 않으면 계속 직업으로 삼기가 어렵다. 실제로도 예술제본가가 되기 위한 재능은 갖췄지만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조 대표는 “예술제본을 할 때는 많은 경험이 중요하다”며 예술 제본가에 관심이 있다면 바로 이 일에 뛰어 들기보다 다양한 경험을 쌓은 후 시작해도 늦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조수진 기자 ejaqh2@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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