⑬ 새벽 버스 새벽 5시, 오늘의 첫 ‘운행을 시작합니다’
⑬ 새벽 버스 새벽 5시, 오늘의 첫 ‘운행을 시작합니다’
  • 이영은 기자
  • 승인 2012.11.17 01:27
  • 호수 13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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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간, 남들보다 먼저 '부르릉' 시동을 건다

⑬ 새벽 버스

새벽 5시, 오늘의 첫 ‘운행을 시작합니다’

 

버스에서 못잔 잠을 채우며, 창밖 풍경을 보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매일 하루 일정시간을 보낸다. 우리네 발이 되고 움직이는 쉼표가 되는 공간, 운전기사 홍순우(58)씨는 첫차 손님들을 태우고 시동을 걸었다. 지난 8일, 힘찬 하루에 시동을 거는 1005-1번 버스의 첫차를 따라 타 봤다. * 운전 중 안전을 위해 홍순우 씨와의 인터뷰는 지난 7일 버스를 운행을 마치고 쉬는 시간에 죽전캠퍼스영업소에서 이뤄졌음을 밝힌다.  <편집자 주>

새벽 4시 30분, 죽전캠퍼스 내 아무도 없는 한적한 도로에 눈감고 있는 버스들이 가득하다. 분수광장 앞부터 사회과학관까지 버스차고지가 되어 있다. 홍순우(58)씨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우리 대학 죽전캠퍼스영업소, 안에는 홍씨 말고도 관리인인 김억수(60)씨, 막차를 운전하고 온 김모(45)씨도 함께 있다. 김씨에게 홍씨가 “너는 왜 집에 안가?”라고 묻자 김씨는 “막차 끌고 나갔다가다 온지 한 시간밖에 안됐다”며 “교통비라도 아껴야지”하고 답한다. 막차를 끌고 나갔다 돌아오면 새벽 3시를 훌쩍 넘는다. 홍씨가 김씨의 충혈 된 눈을 보더니 “그러니까 네 얼굴이 그렇구나”며 어서 휴식을 취할 것을 권한다. 새벽에는 교통편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사가 자가용을 가지고 출퇴근한다. 홍씨의 집은 안산, 5시 첫차를 운행하기 위해선 4시에 집을 나서야 한다. 새벽에는 길이 막히지 않아 20분만 달리면 학교에 도착한다.


버스 운전은 하루 일하고 하루는 쉬는 만큼 체력소모가 심할 것 같았다. 홍씨는 “운전에서는 우리도 ‘프로’들이다. 직업이 운전하는 일이라 장거리 운전이 몸에 뱄다”며 “한 번 운행하고 30분에서 1시간 정도 충분히 휴식을 취하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했다. 막차를 운전하지 않는 날에는 새벽 1~2시정도에 집에 도착한다. 쉬는 날인 그 다음날에는 아침 7~8시에 일어나 간단한 소일거리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 한 기사가 버스운행표에 사인을 하고 있다.

 

 

▲ 새벽 4시 45분, 한 기사가 요금통을 들고 문을 나선다.

 

 홍씨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 사이 첫차를 운전하기 위해 나온 기사들이 하나 둘 도착했다. 버스 시간표에 사인을 하고, 요금통을 들고는 버스로 향한다. 새벽인데도 버스 차고지 안의 분위기는 활기가 넘쳤다. 홍씨는 “당연히 눈이 게슴츠레해가지고는 운전 못한다”며 “새벽 시간 일이 우리는 습관이 돼서 괜찮다”고 말했다. 


4시 50분쯤 홍씨와 함께 첫 차를 타러 나갔다. 버스는 이미 시동이 걸려있었다. 홍씨는 “사람이 워밍업을 하지 않고 일하면 병이 나듯이 기계도 마찬가지라 5분정도 전에 시동을 켜놓는다”고 설명했다. 문을 열고 버스에 올라타자 5시, 버스 카드 리더기는 ‘운행을 시작합니다’하는 소리로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


첫손님으로 우리 대학 정문 앞 버스정류장에서 배웅을 받으며 한 여학생이 버스에 올라탔다. 타 대학 학생인 이모씨(22)는 남자친구와 함께 퇴계기념도서관에서 밤새 공부하고는 돌아가는 길이라고 한다. “빨리 내리려고 뒷문 앞에 앉았다”고 말하던 그는 꾸벅꾸벅 졸다가 내릴 곳을 지나쳐버렸다.


오늘 첫차를 타고 서울역 방향까지 간 사람은 9명. 모두 잠을 자지 않고 다들 무언가를 하고 있다. 매일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전날 회의녹음을 들으며 신문을 읽다보면 직장에 도착한다는 김영선(83)씨, 새벽기도회를 갔다 온 정모(78)씨 등이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간,
남들보다 먼저 ‘부르릉’ 시동을 건다

 

 


서현역을 지날 때쯤 올라타 사과를 꺼내 먹고 있는 김모씨(57)씨에게 말을 걸었다. 김씨는 매일 출근하는 길에 아침대신 사과 하나와 계란을 먹는다. 김씨는 “사과는 냄새가 나지 않아 차 안에서 먹기 좋다. 저녁에 아내가 준비해둔 것을 꺼내 와 출근하는 길에 먹는다”며 “나이가 드니 몸에 좋은 건 다하는 것 같다”며 멋쩍어했다. 왜 집에서 아침을 먹지 않느냐고 묻자 “나 때문에 새벽에 아내를 깨워 피곤하게 하는 것은 싫다”며 “젊었을 때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다 각자의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 김씨가 앉은 자리에서 카드를 버스리더기에 찍고 있다.

 

 


김씨는 최근 은퇴 후 양재 꽃시장에서 경비 일을 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아프면 돈 들고, 서러운 걸 알게 돼 운동과 자기관리를 시작했다”며 “원래 8시까지 출근인데 일하기 전 한시간정도 운동을 하기 위해 일주일에 네 번 정도는 첫차를 탄다”고 말했다. 첫차를 타기위해 집에서 5시에 나와 30분쯤 차를 타고, 45분정도에 사무실에 도착한다. 버스를 타고 10분밖에 걸리지 않기에 좌석버스가 아니면 잘 앉지 않는다. “좌석버스는 자리도 넓고 편안하다. 첫차는 사람도 없어서 매일 뒷문 옆자리에 앉는다. 내릴 때 금방 내릴 수 있고, 카드를 찍기도 편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내리기 전 앉은 자리에서 버스카드를 ‘틱’ 찍고는 하차 벨을 누른다. 양재꽃시장 정류장에 도착하자 기자에게 가볍게 목 인사를 하고 내렸다.


새벽 5시 55분, 강남역에 도착하자 승객들이 우르르 내렸다. 논현역 근처를 지나자 남아있던 손님들도 다 내리고 버스에는 기사와 기자만이 남아있었다. 하루 종일 혼자 운전하다보면 혹시 지루하거나 우울하지 않으냐고 묻자 홍씨는 “운전하다보면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고속도로같이 편안한 길에서는 조금 더 심하다”며 “하지만 앞, 옆, 뒤 운전하는 데만 신경 쓰면 그런 생각들이 없어진다. 조금만 가면 정류장이 나오고, 또 금방가면 정류장이 나오고…. 운전에만 신경쓰다보면 그런 여유도 없다”고 답했다.


새벽 6시 9분, 서울역에 도착했다. 홍씨는 신호에 걸렸을 때 뒤를 돌아 손님들이 놓고 간 물건이 없는지 버스 안을 한 번 쓰윽 둘러본다. 보통 승객들은 핸드폰, 우산 등을 많이 놓고 간다. “한번은 애를 놓고 내린 부모도 있었다”며 “별별 손님이 다 있는데 종종 있는 ‘오바이트’를 해놓고 가는 손님이 가장 싫다”고 말했다. “손님이 오바이트 해놓으면 종점이 될 때쯤 손님이 다 내리고 난뒤 물을 사와서 마포 걸레질로 치우고 운행을 계속하곤 한다”고 말했다. 일을 다 끝마치고 와서도 다시 버스에 남아있는 오바이트를 치우고 가야한다. 홍씨는 “참 곤욕스럽다. 하지만 ‘해놓은 걸 어떻게 할 거야’라는 생각에 투덜거리며 감수하는 편”이라 말했다.

 

▲ 홍순우(우)씨와 김억수(좌)씨가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런데 창피하게도 우리 대학 노선에 들어온 이후로 토를 치우는 일이 더 많아졌단다. 홍씨가 “그런걸 보면 기사들이 이해심이 참 많은 것 같다”며 운을 뗐다. “젊은 기사들 입장에선 동생 같고, 나같이 나이 먹은 사람 입장에서 보면 아들딸 같아서 그런 일도 이해하고, 버스요금이 부족해도 그냥 태워주기도 하는데 학생들은 운전하고 있으니깐 자신보다 밑의 사람으로 내려다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섭섭해 했다.


종점인 서울역을 돌아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 버스는 서울역을 지나 한남대교까지 아무도 타지 않더니 논현역에서 2명을 태웠다. 이후 몇 명의 승객을 더 태운 버스는 빠른 속도로 고속도로를 통해 서울시를 빠져나간다. 홍씨가 거울로 승객의 상태를 확인하며 “첫차 왕복하면 30명 정도 타는데 오늘은 손님이 없네”라며 “기자님도 이제 좀 눈 좀 붙여요”라 말했다. 승객이 한 두 명 정도 남았을 때 기자도 눈을 붙였다.


학교에 도착하니 7시 17분, 홍씨는 사회과학대 뒤 언덕에 주차하고는 “첫차는 밀리지 않아 기분이 좋다. 본래 왕복하는 데 3시간 40분정도가 걸리는데 첫차는 밀리지 않아 2시간 반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첫차를 운행하면 다음 차를 타기까지의 쉬는 시간도 길다. 두 달에 한 번씩 첫차를 운전한다는 홍씨는 “첫차를 운행하면 내 앞에 차가 하나도 없으니 정말 처음으로 도로를 달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며 “첫차를 무사히 운행하고 나왔을 때 비로소 하루를 시작하는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취재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는 이제야 눈을 비비고 올라오는 학생들 몇 명뿐, 아직도 학교는 조용하다. 남들보다 조금 일찍 하루의 시동을 건 첫차운행을 무사히 마쳤다.
 이영은 기자 lye0103@dankook.ac.kr

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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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ye0103@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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