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뚱이는 위대하나 지혜는 갖추지 못했구나-
-몸뚱이는 위대하나 지혜는 갖추지 못했구나-
  • 김철웅 연구원
  • 승인 2012.11.18 21:04
  • 호수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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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토생전(兎生傳)』
▲ 「토생전」을 묘사한 조선후기의 민화

64) 『토생전(兎生傳)』

-몸뚱이는 위대하나 지혜는 갖추지 못했구나-

동해 용왕이 병이 나자 도사가 나타나 육지에 있는 토끼의 간을 먹으면 낫는다고 한다. 용왕은 수궁의 대신을 모아놓고 육지에 나갈 사자를 고르는데 서로 다투기만 할 뿐 결정을 하지 못한다. 이때 별주부 자라가 나타나 자원하여 허락을 받는다. 육지에 오른 자라는 동물들의 모임에서 토끼를 만나 수궁에 가면 높은 벼슬을 준다고 유혹하면서 지상 생활의 어려움을 말한다. 이 말에 속은 토끼는 자라를 따라 용궁으로 간다.

간을 내놓으라는 용왕 앞에서 속은 것을 알게 된 토끼는 꾀를 내어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고 한다. 이에 용왕은 크게 토끼를 환대하면서 다시 육지에 가서 간을 가져오라고 한다. 자라와 함께 육지로 나온 토끼는 어떻게 몸 밖으로 간을 내놓고 다니느냐고 자라를 나무라면서 숲 속으로 도망가 버린다.” 이것은 자라와 토끼의 간이야기로 널리 알려져 있는 판소리 수궁가의 줄거리이다. 이 이야기는 고소설에도 등장하는데 제목만 보더라도 별주부전, 토생원전, 토끼전, 토선생전, 토별산수록, 토생전, 토의간, 토처사전, 별토전 등으로 다양하다. 우리 대학에는 󰡔토생전(兎生傳)󰡕이란 제목으로 1848(헌종 14)에 간행한 유동신간(由洞新刊)’본이 있다. 이것은 이른바 방각본(坊刻本)’으로 민간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간행한 것이다. 조선후기에 도서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방각본이 간행되어 독서 인구의 확대에 크게 기여하였다. 방각본인 토생전역시 일반 백성들이 널리 애독한 책이었음을 알 수 있다.

토생전에는 서민의식을 바탕으로 날카로운 풍자와 익살스러운 해학이 잘 나타나 있다. 풍자성은 지배층에 대한 저항의식의 표현이었다. 토생전류의 형성 시기는 17, 18세기로 추정되는데, 지배층의 부패와 무능으로 백성들의 불만이 커져갔던 때였다. 토생전에 나타나 있는 세계는 용왕을 정점으로 한 자라 및 대신들의 용궁세계, 그리고 토끼를 중심으로 한 여러 짐승들의 육지세계로 나뉜다. 전자는 지배층의 세계를, 후자는 피지배층의 세계를 각각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주색에 빠져 병이 들고 어리석게도 토끼에게 속아 넘어가는 용왕과 어전에서 싸움만 하고 있는 수궁대신들은 당시 부패하고 무능한 지배관료들을 상징한다. 이와 반대로 토끼는 서민을 상징한다. 수궁에서 호의호식하고 높은 벼슬을 할 수 있다는 자라의 말에 속아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지만 끝내는 용왕을 속이고 수궁의 충신 자라를 우롱하면서 최후의 승리를 얻는다. 이러한 결말은 이 이야기의 주제가 서민의식에 바탕을 둔 신랄한 사회 풍자에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수궁가토끼전이든 『삼국사기』에 실린 거북과 토끼의 간 이야기를 모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원래는 인도의 설화이며 중국의 불경에도 실려 있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토끼의 간 이야기는 인도, 중국을 거처 멀리 한반도에 이르는 긴 여행을 하였다. 그 과정은 우선 석가의 전생을 다룬 인도의 『자타카』, 설화를 모은 『판차탄트라』에서 시작한다. 이것이 불경에 흡수되고 불교의 전파와 함께 중국에 들어와 한자로 번역되어 『육도집경』, 『불본행집경』 등에 실렸다. 이들 불경이 중국에서 번역된 것은 대략 3세기에서 5세기에 이르는 기간이다. 이 단계에서 등장하는 동물은 원숭이와 악어이고, 악어의 아내가 원숭이의 간을 먹고 싶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한역 경전에서는 다시 원숭이와 자라, 또는 원숭이와 용으로 변한다. 원숭이는 악어 또는 자라에게, “몸뚱이는 위대하나 지혜는 갖추지 못했구나라고 꾸짖고, 악어나 자라는 악당인 제바달다로 악어가 원숭이 간을 탐내는 것처럼 제바달다가 석가를 해치려 하였다는 결말로 끝난다.

이후 이 이야기는 우리 나라에 들어와 『삼국사기』에 실리게 되었다. 이것이 오래 시간을 거쳐 설화로 구전되다가 조선후기에 이르러 판소리로 재탄생하게 되었으며, 이후 토생전, 토끼전등 여러 이름의 고소설이 되었다. 이처럼 처음에 교훈적이고 종교적 의미를 띠었던 인도의 설화가 조선후기에 들어서 한국적인 판소리와 고소설로 재탄생하였다. 김철웅(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김철웅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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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m9963@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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