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사람들을 만나다 ⑭ 바의 새벽
새벽사람들을 만나다 ⑭ 바의 새벽
  • 김예은 기자
  • 승인 2012.11.20 15:53
  • 호수 1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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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세상 흔들리지 않는 새벽 바텐

바텐더는 ‘밤의 의사’
인사불성 될 때까지 마시는 손님 제일 싫어


▲한 바텐더가 칵테일을 제조하고 있다.


지난 17일 토요일 밤 11시.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천안 신세계백화점 맞은편 거리 골목골목은 ‘불타는 토요일’ 밤을 즐기려는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쿵쿵거리는 음악소리를 너머 들어선 웨스턴바 ‘더 플레어’ 천안점에는 점장 바텐더 루이지를 비롯해 5명의 알바생들이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일하고 있었다.  <편집자 주>

“사랑합니다. 신나는 더 플입니다!”
딸랑이는 종소리에 직원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기자를 반겼다. “아까 통화한 단대신문에서 나왔다”는 말에 직원들이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묻는다. “동아리에서 취재하는 거예요?” 신문을 보여주며 ‘새벽사람들을 만나다’의 취지를 설명하자 점장은 흔쾌히 취재를 허락하면서 “우리 가게에도 단대생이 두 명 있다”고 귀띔해줬다.

“단국대에서 오셨어요?”
우리 대학 모 과 3학년 휴학생이라는 바텐더 미니가 점장의 말을 듣고 인사를 건네 왔다. (더 플레어에서는 모든 바텐더들이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다.) 그는 1년 전 친구의 소개로 이곳을 방문한 후 재밌고 편한 분위기에 반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이번 학기부터 휴학하고 바에 전념하고 있다는 그는 아르바이트생으로는 드물게 점장과 함께 플레어 쇼도 진행하고, 칵테일을 만들기도 한다. 원래 아르바이트생에게는 잘 알려주지 않지만 담배, 커피를 뇌물로 바친 끝에 배울 수 있었다고.

“칵테일 제조를 배우면서 손님과 대화하기도 편해지고, 손님에게 칵테일을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게 됐다”는 그에게 기자에게 어울리는 칵테일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메뉴판을 보며 고심 끝에 그가 내놓은 답은 ‘코스모폴리탄’.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주인공들이 즐겨 마신 칵테일이라 성공한 커리어우먼이면서도 냉정한 느낌이 드는 코스모폴리탄이 정보를 캐치하는 날카로운 기자들의 모습에 어울린다는 설명이다. 그는 “실제로 많은 손님들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칵테일을 추천해 달라고 말하곤 한다”며 “보통 어떤 과일향이 좋은지, 알코올 도수는 얼마정도가 적당할지 등 최대한 손님의 취향을 물어본 후 ‘보편적’인 칵테일을 추천한다”고 덧붙였다.

“처음에는 낯을 가려 손님들과 말도 잘 못했어요”
“손님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부럽다. 비결을 알려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본인을 ‘바텐더계의 김구라’라고 소개한 바텐더 펑키의 장난기 많은 모습을 보니 그의 말을 쉽사리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손님들에게 미리 준비한 재밌어할 만한 말을 하나씩 건넸을 때 손님들이 웃는 모습을 보며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다고 설명을 더했다. 최근 안 보던 웹툰도 찾아보고 있다는 그는 “바텐더로서 마술과 같은 간단한 재주, 재밌는 이야기를 준비하는 것은 필수”라며 “손님들과 술 한 잔 하며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최근 대세, 유행하는 것들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점장 루이지(Luigi)가 칵테일 쇼를 선보이고 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12시가 지났다. 잠시 손님들이 술렁이는 것 같더니 이내 가게 전체에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고 점장 루이지와 미니의 플레어 쇼가 시작됐다. 동작 하나하나가 끝날 때마다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 것이 이 쇼를 보기 위해 가게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이 실감났다.

아르바이트생 중 유일하게 쇼를 함께하는 미니는 “오늘 긴장해 평소에 안하던 실수를 여러 번 했다”고 민망해 하며 “처음 병 돌리기를 배울 때는 직원들 눈치가 보여 연습 한 번 하기도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점장이나 직원들이 담배 피우러 갈 때, 화장실에 갈 때, DJ박스에 갈 때 등 잠깐 자리를 비울 때나 몰래 연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영업이 끝난 후에는 연습을 할 수 없어서 집에서 소주병으로 연습했다. 익숙하지 않아 소주병을 많이 깨면서부터는 검은 테이프로 칭칭 감은 소주병과 부탄가스로 연습을 계속했다.

쇼가 끝나자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가고 바 테이블의 몇몇 손님들만 남았다. 바에 앉은 손님들은 바텐더와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맥주를 걸고 가위바위보나 다트 게임 내기를 하는 등 친구 같은 모습을 보였다. 미니는 “손님들과 다트를 하는 등 함께 노는 것이 즐겁다. 절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즐겁다”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펑키는 “보통 손님과 직원이라는 관계로 만나면 약간의 거리감이 있기 마련이지만 이런 편안한 분위기가 우리 가게만의 장점”이라고 자랑한다.

▲칵테일 '마이걸'



일하면서 힘든 점은 없을까.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는 바텐더들은 시험기간이나 과제가 겹칠 때 가장 피곤하다고 말한다. 여성 바텐더들은 늦은 귀가시간도 힘든 점으로 꼽았다. 바텐더 마틸다는 “지금 기숙사에 살고 있는데 새벽에 들어가니 시간이 애매해 기숙사 앞에서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릴 때도 많다. 택시를 타야 하니 차비도 많이 든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바텐더 생활 7년차라는 점장 루이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낮 생활을 하기 때문에 지인들과 시간이 잘 안 맞아 오랜 인맥이 한 순간에 끊어질 수 있다”며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멀어진 것을 느낄 때가 가장 힘들다”고 덧붙였다.

초면에 대뜸 “이것 줘”라고 말을 놓고 주문하는 손님, 욕하는 손님, 돈을 못 내겠다고 하는 손님, 6천 원짜리 맥주를 시키면서 만 얼마치의 서비스를 바라는 손님, 무리하게 없는 재료를 요구하는 손님. 바에서 일하다 보면 꼭 만나게 되는 손님들이다. 바텐더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주량을 넘어설 때까지 술을 마시는 손님이 최악”이라고 입을 모은다. 손님들을 유심히 살피며 “많이 드신 것 같다”고 자제시키지만 술 취해 진상부리는 손님은 사라지지 않는다.

술 취한 손님들과의 이야기는 대개 그 결말이 더럽다. 경찰도 여러 번 출동한다. “그제는 옷을 입은 채로 그대로 소변을 본 손님도 있었다”며 미니가 다시는 떠올리기 싫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이쯤이면 가게를 정리할 때까지 얌전히 자고 있는 손님은 양반으로 보일 지경이다.
“바텐더는 ‘밤의 의사’라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바텐더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손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마틸다는 “처음 온 손님인데도 “남자친구랑 헤어졌는데 어떻게 하냐”, “오늘 너무 속상하다” 등 푸념을 늘어놓곤 한다”며 “그럴 때는 모든 바텐더들이 진심으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을 해준다. 이런 점 때문에 사람들이 바를 찾는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미니는 “남성 바텐더보다 여성 바텐더에게 더 쉽게 고민을 털어놓는 것 같다”고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나는 실제로 약간 차가운 성격이라 손님이 고민을 얘기하면 현실적인 조언을 해줄 것 같다”고 말했다.

며칠 전에 굉장한 거구의 남성이 술을 마시더니 울면서 “미니씨, 여자친구랑 헤어졌는데 가슴이 너무 아파요”라고 말했는데, 친구였으면 “여자친구랑 헤어질 수도 있지 뭐”라고 말해줬을 텐데 손님이라 어떻게 위로해야 하나 당황했다며 웃는다. 한편, 그는 손님들에게 힘들고 지친 상황을 티내지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광대같다”고 평했다. 최근에 여자친구와 헤어져서 힘들고, 다른 사람에게 위로받아야하는 입장이었는데도 손님 앞에서는 웃으면서 말했을 때 특히 그렇게 느꼈다고.

커피 한 잔으로 졸음을 떨치며 “오늘은 손님이 많아 마감이 늦어질 것 같다”면서도 얼굴의 웃음을 잃지 않는 바텐더들을 뒤로 하고 바를 나온 시각이 새벽 4시경. 홀로 동이 터오는 골목길을 빠져 나오는데 점장의 말이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밤에 일한다고 모두 힘든 것은 아니다. 밤에 일하면 돈을 더 받아야 한다는 것도 어디서 나온 말인지 모르겠다. 나는 새벽 5, 6시에 퇴근하지만 아침 10시쯤에는 꼭 일어나는데, 대학생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차이는 단지 내가 조금 더 활동을 많이 한다는 것뿐이다.”

 김예은 기자 eskyen@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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