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볼펜] 재미있는 이야기
[백색볼펜] 재미있는 이야기
  • 김상천 기자
  • 승인 2012.11.20 22:21
  • 호수 13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편들은 이사갈 때 얼른 개부터 찾자

◇ 신문이라고 목에 힘주고 쓰는 것도 지겹다. 세상에 좋은 글 쓰시는 분들이 많으니 그냥 귤이나 까먹으면서 웃기는 얘기나 좀 하련다. 며칠 전 경희대 학보사 편집장은 중앙일보 대학생칼럼을 베껴쓰다 걸려서 짤렸다는데. 정 쓸 게 없으면 나처럼 귤 까는 소리나 하면 되지 대학신문 편집장이 뭐 대단한 글 쓰는 사람이라고 그렇게 부담을 느꼈을까. 넌 개념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헤헤 그 말도 일리가 있다.

◇ 우리 어머니 회사 동료 중에 산 좋아하시는 점잖은 아저씨가 한 분 계신다. 그런데 이 아저씨가 요즘은 통 산에 못 오른다. 대신 주말마다 집에서 마늘을 까거나 콩나물을 다듬는다는데. 사연인즉 이렇다. 두어 달 전에 아저씨네 집 개가 병에 걸렸다. 10년 넘게 키워온 놈이다. 수술을 해야 한다는데 400만원이 넘게 드는 수술이란다. 인터넷 애견동호회 회원이기도 한 아내는 개를 자식보다 더 아끼는 걸로 유명하다. 아저씨는 아내가 낮잠 잘 때를 틈타 몰래 개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갔다. 웃돈을 좀 얹어주니 그 자리에서 안락사를 시켜주더란다. 같이 살면서 정든 개가 좀 안됐긴 했지만 개라면 껌벅 죽는 아내 밑에서 호강하며 살만큼 산 개가 아닌가. 수술해봐야 고칠 수 있을지, 고쳐도 몇 년이나 더 살지 모를 개를 위해 400만원이 넘는 돈을 쓸 수는 없었다.

◇ 당연히 뒤집어지고 난리가 났다. 아내는 엉엉 울며 당장 나가라고 국자며 가위며 크리넥스며 닥치는 대로 집어던졌다. 그때부터 아저씨는 아내 눈치만 살피며 아침밥도 저녁밥도 언감생심 쭈구리가 돼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는 아내가 사납게 쏘아붙일 때마다 곁눈질로 등산 장비만 힐끗거렸다. 주말아 주말아 얼른 와라. 저 높은 산 위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주말이 빨리 좀 와라. 그리고 주말 아침, 아내는 아저씨 앞에 마늘 한 박스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거 다 까놔라. 아내는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저씨는 째려보는 아내 눈빛을 통해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당신이 내 삶의 행복을 안락사 시켰으니 나도 당신 행복을 빼앗아야겠어! 저번주 일요일에는 아저씨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김장이라는 것을 해봤다고 한다.

◇ 아저씨 심정도 이해가 가고 아내 심정도 이해가 돼서 웃기면서도 슬픈 사연이다. 그런데 이 눈물 나는 비극 가운데도 희소식이 하나 있었다. 의외의 수입이 들어온 것이다. 인터넷 애견 카페 회원들이 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부조금(!)을 걷었다. 200만원이 넘는 돈이었다. 통장 잔고를 보고 황당하고 당황한 아저씨는 아내에게 물었다. 아니 요새는 개가 죽어도 부조를 한단 말이야? 아내는 또 힐끗 쏘아보며 답했다. 당신, 남편들은 이사갈 때 개부터 찾아서 끌어안고 있어야 된다는 말도 몰라? 남편은 몰라도 개는 안 버린다고.  

<칙>

김상천 기자
김상천 기자 다른기사 보기

 firestarter@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