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
68.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
  • 이호연 기자
  • 승인 2013.03.19 17:00
  • 호수 1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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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수업은 이만큼이나 섹시합니까?
학교는 생각보다 단순한 공간이다. 특히 입시에 열광하는 고등학교라면 더더욱. 그러나 이 단순한 공간이 수많은 매체에 단골로 등장하는 이유는 그 안의 구성원들이 너무나도 특별하기 때문일 것이다.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 역시 이 단순하면서도 특별한 공간을 배경으로 모든 사건이 진행된다.
<히스토리 보이즈>에는 80년대 영국의 낙후된 공립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총 4명의 선생과 8명의 학생이 나온다. 각자의 생각과 성향이 확실한 여덟 학생의 유일한 공통점은 똑똑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영국의 명문대 옥스퍼드와 캠브릿지, 이른바 옥스브릿지를 위해 공부하는 특별반의 수재들이다. 헥터와 어윈은 다른 방식으로 이들을 가르치는 열정적인 교사다.
고전을 줄줄 읊는 할아버지 선생님 헥터는 아이들에게 낭만을 가르치고,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청년 선생님 어윈은 아이들에게 입시를 가르친다. 여느 학원물처럼 교장은 어윈을 선호하지만, 여느 학원물과 달리 학생들은 헥터와 어윈의 수업방식을 모두 잘 따라온다. 이유는 분명하다. 옥스브릿지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자유로운 분위기에 어울리는 엄청 섹시한 소년들이기 때문이다.
12명의 구성원 중 11명이 남자고, 그 중에서 4명이 동성애자다. 남교사(헥터)는 자신이 가르치는 남학생(데이킨)에게 성추행을 서슴지 않고, 그 남학생은 동성친구(포스너)와 또 다른 남교사(어윈)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다. 아무리 개방적인 유럽이라고 해도 가장 보수적인 학교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사건들은 누가 보기에도 비정상적이고 비윤리적인 설정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섹시한 남자들의 변명은 따로 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반하는 비공식 성범죄자 헥터는 “지식의 전달은 원래 에로틱한 행동”이라고 항거한다. 다시 말하자면 극작가는 동성애라는 하나의 키워드를 통해 사제관계와 우정, 성장, 파워게임까지 나타낸 것이다.
(*여기서부턴 스포일러주의)‘역사 소년’ 8명은 모두 선생님들, 특히 교장선생님의 강력한 바람대로 옥스브릿지에 합격한다. 헥터가 성추행한 바로 그 데이킨의 꾀 덕분에 헥터의 권고사직도 무효로 처리된다.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 같았던 역사 소년들의 이야기는 마지막까지 커다란 반전을 남겨 놓는다. 반전이 되는 굵직한 사건도 지나가고, 역사 소년들이 옥스브릿지를 졸업한 어엿한 청년이 된 이후의 이야기는 유일한 여교사 린톳에 의해 설명된다. 아이러니한 것은 입시를 위해 헥터를 깎아내리면서까지 어윈의 수업방식을 따랐던 포스너가 가장 헥터다운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친구들과 달리 시골마을에서 글을 쓴다. “넘겨주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라는 헥터의 마지막 대사처럼 그는 포스너에게 적당한 행복을 ‘넘겨줬다’.
영국의 거장 앨런 베넷이 일흔에 집필했다는 이 작품은 15분의 인터미션을 포함해 약 3시간가량 진행된다. 거기에 헥터와 그의 제자들이 외우는  고전 인용구와, 어윈과 그의 제자들이 바라보는 새로운 역사는 몇몇 관객에게 따뜻한 잠자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특별반의 수업을 잘 따라온다면 가슴뿐 아니라 머리에도 양식이 가득 차는 걸 느낄 수 있다. 역사 소년들의 이야기는 오는 31일까지 두산아트센터에서 들을 수 있다.
이호연 기자 hostory3253@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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