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건축학개론〉의 서연
① 〈건축학개론〉의 서연
  • 이호연 기자
  • 승인 2013.03.19 17:04
  • 호수 1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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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기라는 집을 짓는다
많은 사람들이 본 영화이지만 혹시 아직 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간단히 스토리를 전개하기로 한다. 이 영화는 건축학 개론 시간에 만나게 된 새내기 남녀 대학생들의 풋풋한 연애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는 첫사랑의 아쉬움 대해서 말하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할 수 도 있지만 무언가 중요한 이야기를 그 안에서 하고 있는 것 같다.
대학 새내기인 음대생 서연과 건축가생인 승민은 건축과 개론 수업에서 처음 만난다. 교수는 첫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를 잘 관찰하고 기행문을 써서 레포트로 제출하라고 한다.
건축과 선배를 통해서 알게 된 두 사람은 짝이 되어 동네기행을 다닌다. 시원시원해서 당돌해보이기 까지 하는 서연과 좋아하면서도 자기감정을 차마 표현하지 못하고 속만 끓이는 승민이 서로에 대한 호감을 키워가고 있던 어느 날, 승민은 자기가 살고 싶은 집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던 서연이를 위해 그녀에게서 들은 대로 그린 조감도를 따라 집의 조형물을 만들고 그녀를 깜짝 놀라게 해주려는 마음에서 서연의 집 앞에 찾아와 기다린다. 그러다가 정말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을 보게 된다. 승민이가 본 것은 술에 취해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서연과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고 들어가는 과선배의 모습, 승민은 울분과 절망, 분노에 몸을 떨다가... 급기야 마음속으로부터 그녀를 지워버린다.
서연이 입학 첫 학기에 건축학개론을 선택한 것을 보면 그녀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했을 수 도 있지만 무의식적으로 집(자기를 상징)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그녀가 승민과의 동네기행에서 맨 처음 관심을 보인 것은 오래전에 살던 사람이 떠나가 버린 담쟁이가 대문을 타고 올라가고 있는 비어있던 집이었다. 이 빈집이 어떻게 그녀의 눈에 들어오게 되었을까?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본다고 하지 않던가? 어쩌면 이 빈집은 제주도를 떠나 도시에 있는 대학에는 들어왔지만 왠지 도시 아이들과는 어울리기 어렵고 서먹한 자기의 외롭고 허전한 마음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수 있고, 어머니 돌아가신 후 외롭게 아버지와 단 둘이 살아온 허전한 자신의 내면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마음이 끌렸던 것 같다. 그 빈 집에서 서연은 과거시간에 멈춰 서 죽어있는 시계에 눈이 가고 그 시계에 밥을 준다. 허전하고 허기진 과거에 머물고 있는 자신을 회복하려고 하는 것처럼...
그녀는 승민에게 이층집을 짓고 마당에는 개를 키우면서 살 수 있는 집은 지어달라고 부탁한다. 어찌 보면 그녀는 착실하고 선량해 보이는 승민과 결혼해서 안정적으로 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허나 승민은 이층집에 대한 이야기에서 그녀의 마음을 읽지는 못했던 것 같다. 승민이 떠나간 자리에 그녀는 자신의 허전함을 채워줄 조건이 좋은 남자를 만나 이층집을 짓지만 그 집은 생각보다 안전하지가 않았던지 곧 허물어져 버린 것 같다. 이혼과 함께 예전의 그 익숙한 허전함 속으로 돌아온 그녀는 예전에 살았던 제주도 집을 다시 집을 지을 생각을 하고 승민의 건축설계사무실을 찾아가 부탁한다. 건축 현장을 방문한 승민과 제주도 해변가 식당에서 저녁을 먹던 서연은 인생이 매운탕처럼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맵기만 하다고 하면서 참았던 울음을 쏟으며 이번 기회에 리셋하고 인생을 다시 살아보고 싶다고 소리 지른다. 인생의 고비에서 약해지거나 허물어지려고 할 때마다 서연은 집짓기를 통해 자신의 허약한 내면을 일으켜 세우고 자신과 자신의 삶을 회복해 내려고 애썼던 것 같다. 승민이가 건축학을 선택한 이유도 무의식적으로는 30년도 넘게 살아온 낡아빠진 집(자기)을 새롭게 건축하고 싶어서였을까?
<용어해설>
자기(self): 정신분석심리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다음의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다.
① 전체로서의 정신을 의미
② 정돈되고 유형화 된 방식으로 기능하는 정신의 경향성
③ 인간의 성장과 발달에 대한 이미지들을 산출하는 정신의 경향성
④ 출생 시부터 존재하는 유아의 심리적 단일성 (이 단일성은 삶의 경험들로 점차 깨어지지만 이후에 통합을 이루는데 필요한 청사진의 역할을 한다)
⑤ 때때로 유아에게 ‘자기’를 가져다주는 사람은 어머니로 여겨진다. 이것은 정신분석에서 반영(mirroring)으로 불리는 과정과 유사하다.
김연우 정신분석심리치료사
이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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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story3253@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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