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보던 국민 드라마 내 딸 서영이, IMF 시절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가정적이고 자상하던 아버지가 엇나가기 시작하고 가족들이 어려움을 겪는다. 엄마가 힘겹게 돈을 벌고 딸이 어렵게 알바해서 힘을 보태지만 아버진 도박판까지 기웃거리며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가정을 지켜주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넉넉하지 않은 가정형편으로 인한 상처를 자존심으로 겨우겨우 버텨내지만 어머니는 결국 빚쟁이에 시달리다가 돌아가신다.
험한 현실 앞에서 서영은 자포자기하거나 자신을 망치는 것으로 아버지에게 복수하는 대신에 중국집 알바를 하면서 동생 학비를 대고 그러면서도 억척스럽게 자신의 삶도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동생은 의사, 자신은 변호사가 된다. 재벌 집 맏아들을 만나 결혼도 한다. 그러나 고통은 사람을 강하게도 하지만 독하게도 하는 것 같다.
딸의 인생에서 아웃 당한 아버지는 딸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다. 아버지의 존재가 부끄러웠던 서영은 차라리 없었으면 싶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말하고 재벌시댁 역시 어줍잖은 사돈이 있는 것보다는 없는 편을 훨씬 홀가분하게 여긴다. 아내도 자녀도 떠나간 허허로운 삶의 자리에서 가장은 비로소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이일 저 일을 하던 중 결혼식 하객 알바를 갔다가 우연히 딸의 결혼식에 참석한다. 딸은 아버지를 보지 못했지만 아버지는 혼자 놀라고 당황하며 가슴이 먹먹해진다.
상처를 받은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 상처를 돌려주는 법인지…. 서영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상처를 아버지에게 돌려준다. 자신의 인생 속에서 아버지를 지워버리고 그 닥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서영의 거짓말이 남편과 시댁에 드러난다. 그러나 서영은 자신의 상황과 의도에 대해서 함구하고 또 그렇게 생겨나는 오해들로 인해 부부관계는 데면 데면해지고 결혼생활은 위기를 만난다. 서영은 자신을 해명하고 변호하고 싶기도 하지만 그녀의 자존심은 구구하게 변명하기보다는 차라리 이혼을 택한다.
서영은 삶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고 명쾌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아버지에 대한 믿음을 그렇게 철수 해버리면서도 아버지에게 변명할 수 있는 기회도 주지 않았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부모들 역시 실수도 하고 실패해서 주저앉기도 하고, 재기를 꿈꾸고 노력도하지만 찌질함을 벗어 버리지 못하는 한계를 가진 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자식들의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드라마 후반에 자주 등장하는 서영의 어린 시절의 회상장면에는 아버지와 어린 서영의 관계가 매우 정겹게 펼쳐진다. 어린 딸은 이다음에 크면 아버지 같은 사람하고 결혼하겠다고 하며 아버지를 따르고 좋아한다.
어린 딸에게 아버지는 매우 자상하고 좋은 사람이었고 서영은 어린 시절에 그 아버지를 마음껏 이상화하면서 건강하게 잘 성장했던 것 같다. 크고 강하고 무엇이고 다 할 수 있는…. 마음껏 의지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아버지 경험, 아이들이 자신감과 능력, 꿈을 이뤄낼 수 있는 힘도 실은 그런 아버지 경험에서 온다고 볼 수 있다. 그러기에 그 환상이 여지없이 깨어지는 현실의 경험(아버지의 실패)은 인생과 삶에 대한 서영의 믿음을 흔들어 버렸던 것 같다. 어릴 적 내면에 심어진 아버지상과 현실 속의 찌질한 실패자로서의 아버지상이 서로 충동하면서 차라리 아버지가 없다고 부정할지언정 그런 아버지를 인정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다.
현실적인 좌절과 한계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늘 삶을 회복하고자 하는 강한 회복충동을 보인다. 우연히 서영의 동생이 의사가 되고 서영이 변호사가 된 것 같지는 않다. 깨어진 삶으로 부터 입은 상처를 치료하고 예측할 수 없는 삶에서 주어진 부당한 억울함을 호소하고 변호하고 싶었던 욕구 그래서 더 이상적인 삶을 향한 포기할 수 없는 회복의 욕구가 그들을 그렇게 이끌었을 것 같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서영이 그것을 이루어 낼 수 있었던 저력은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좋은 관계의 경험들과 그 아버지를 이상화했던 그 내적인 힘과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연우 정신분석심리치료사

이호연 기자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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