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볼펜]사후세계
[백색볼펜]사후세계
  • 조수진 기자
  • 승인 2013.04.09 14:38
  • 호수 13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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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세계 믿든 안 믿든 중간만 하자

◇사후세계를 믿는가. 필자는 사후세계를 믿는다. 딱히 특정 종교를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죽은 뒤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면 너무 허무하지 않는가. 그러나 어떤 사후판결이 있을 거라 추측할 뿐이지 천국과 지옥이 있을지, 환생을 할지 필자도 정확히 믿는 건 없다. 필자가 생각하는 사후 세계는 웹툰 <신과 함께>에서 묘사하고 있는 모습과 가장 유사하다. 염라대왕이 있고, 죽은 사람들은 49일 간 자기가 살았던 삶에 대해서 재판받는다. 재밌는 건 재판을 받는 동안 자기를 옹호해 줄 변호사 수임료는 자신이 생애에서 기부한 돈만큼 낼 수 있기 때문에 담당 변호사도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재판장에 향하는 수단 또한 기부했던 돈에서 빠져나가기 때문에 교통수단도 다 제각각이다. 누구는 크루즈 여행이라도 떠날 듯한 배를 타고 누구는 고기 잡는 통통배를 타기도 한다. 음, 갑자기 무서워진다. 필자가 재판을 받는 다면 어떤 변호사와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을까.

◇적어도 큰 죄를 짓고 살진 않았으니 사후세계에서도 중간은 가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신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갈 것이고, 신을 믿는다면 모든 죄를 사하고 구원받을 것이다”라는 말처럼 절대자를 믿는 여부가 중요한 판결 요소가 된다면 매우 곤란해진다. 필자는 사후세계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어떤 절대자를 믿고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괴테의 <파우스트>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파우스트의 엔딩은 신에 대한 믿음 하나로 모두가 죄를 덮고 구원받게 되는 내용이다. 악마에게 자신을 판 파우스트와 결혼했던 그레트헨은 비록 자신의 사랑을 위해 어머니를 죽이고 자기 자식까지 죽음에 이르게 하지만 마지막 뉘우침을 통해 신에 대한 믿음을 이끌어 내고 구원받는다. 파우스트도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죽기 직전까지 오만했지만 결국 구원 받으며 얘기가 마무리 된다.

◇<파우스트>엔딩에 대해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의 저자 김용규 소설가는 “구원의 문제는 믿음의 문제이지 선악의 문제가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그 믿음 앞에서는 ‘뉘우침’에서 나온 ‘최고의 자기부정’, ‘무한한 자기 체념’이 필히 전제되어 있다는 말이지요”라고 해석했다. 필자는 이 엔딩에 대해 회의적이다. 이 엔딩이 지금의 사회에 적용되기에는 세상이 너무 험악할 뿐더러 씻지 못할 죄를 짓는 사람이 너무 많다. 착실하고 평범하게 자기 생활을 살다가 죽은 사람과 성추행, 성폭행을 했지만 죽기 전 회개했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같은 판결을 받는 다면, 그 판결 기준이 ‘믿음’이 된다면얼마나 원통한 일인가. 오직 믿음 하나로 구원되는 것이 정말 자비롭고 공정한 것인지는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신이 있다면 믿음과 비례해서 죄를 가감시키는 것이 아니라 살아 온 인생을 비춰 내리는 판결이 공정한 것이 아닐까. 죄는 짓지 말자. 죽어서 원치 않은 국토대장정을 해야 될 수도 있다. 현실을 믿든 사후세계를 믿든 중간만 해도 ‘장땡’이다.  

<秀>

조수진 기자
조수진 기자

 ejaqh2@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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