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성달성26. 포르노의 미학
알성달성26. 포르노의 미학
  • 서 민(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3.04.09 14:41
  • 호수 13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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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 대신 불편함을 느꼈다

2006년 10월, 김본좌가 구속됐다. 혼자 몸으로 우리나라 야동의 70%를 담당하던 야동계의 전설 김본좌가 어긴 법령은 음란물 유포죄. 그는 붙잡히기 전까지 인터넷에 1만4천편에 달하는 야동을 올렸다고 한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야동을 다운받을 수 있는 현실에서 야동을 올리는 게 죄가 된다는 게 뜬금없게 생각되기도 하지만, 결국 김본좌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는다.

포르노를 처음 본 건 본과 2학년이던 1988년, 일반 대학으로 따지면 4학년이 됐을 때였다. 인터넷에 없던 시절이었으니 지인한테 포르노를 보려면 집에서 봐야 했는데, 혼자 사는 것도 아니고, 어머니가 늘 계시는지라 들킬 염려가 컸다. 게다가 컴퓨터야 자기 방에 있고, 또 언제든 다른 화면으로 바꿀 수 있는 데 비해 비디오는 가족이 수시로 드나드는 마루에 있으니 마음 놓고 집중할 수가 없었던 것. 이십 오년 전 그날 포르노를 볼 수 있었던 건 여름방학을 이용해 친구들과 부산에 놀러가 여관에 묵었던 덕분이었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우리가 묵은 여관에서 비디오를 틀어주지 않는 게 아닌가? 포르노를 눈이 닳도록 본 내 친구들은 아쉬울 게 없는지 맥주나 먹자고 했지만, 이번이 절호의 기회라고 여긴 난 그럴 수 없었다. 여관주인에게 전화를 했다.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은 여관 주인은 얼마 후 그다지 질이 좋지 않은 테이프를 틀어줬다. 15분도 채 되지 않은, 별반 내용도 없는 포르노를.

그 후 다른 곳에서 포르노를 몇 번 더 본 적이 있다. 그 포르노들은 화질도 괜찮고 분량도 충분히 길었지만, 스토리가 없다는 점에서는 그 15분짜리와 다를 게 없었다. 개연성이 없이 옷을 벗는 것도 그렇지만, 남성의 그것은 무릎에 닿을 듯 컸고, 여성의 가슴이 비현실적으로 큰 것도 어느 필름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포르노의 가장 큰 특징은 남성지배적인 행위였다. 여자는 남자를 온몸으로 갈구하고, 남성은 여성에 대한 배려 없이 무자비하게 여성을 유린했으니까. 그래서였을 거다. 내가 포르노를 보면서 흥분 대신 불편함을 느꼈던 게 말이다. 여성단체가 포르노를 반대하는 이유도 포르노가 남성에게 그릇된 성적 판타지, 예를 들어 여성은 강한 남성과의 관계를 갈구한다는 식의 판타지를 심어주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액션영화를 보고 싸움질을 하는 사람이 드문 것처럼, 포르노를 봤다고 해서 원래 안 그러던 사람이 갑자기 여성을 학대하는 사람으로 변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포르노가 남성들의 몸 깊숙한 곳에 내재되어 있는 지배욕구를 충족시킴으로써 보다 나은 삶을 살도록 도와 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본다면 일본에서 수많은 야동을 들여와 일반인에게 공급한 김본좌는 사회 전체의 스트레스를 해소시킨 영웅일 수도 있다. 그가 구속된 후 사람들이 “훈장을 줘도 시원치 않을 판에 구속이라니!”라며 반발하고, 그의 석방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이 벌어진 것도 그런 이유였으리라. 그가 진짜로 한 말은 아니겠지만 시중에 떠돌던 김본좌 어록을 보면 그저 고개가 끄덕여진다. 예를 들어 김본좌가 구속될 때 주위 사람들에게 했다는 말을 보라. “너희들 중에 하드에 야동한편 없는 자 나에게 돌을 던지라.” 이 말은 또 어떤가. “나는 가지만 진정 가지 아니하리니. 나의 자료가 너희들의 하드디스크에서 살아있느니라.” 그를 붙잡은 경찰의 하드에 김본좌의 야동이 있었다면, 그 경찰이 김본좌를 끌고가는 건 과연 정당할까? 그의 어록을 하나만 더 보자. 하루도 빠짐없이 업로드를 하던 김본좌가 8월 15일에는 업로드를 안했단다. “광복절만이라도 일본 AV 보지 맙시다.”

야동을 찬성하던 반대하던, 지금이 업로더를 잡아들임으로써 야동을 억제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데는 다들 동의할 것이다. 김본좌가 구속된 이후 제2, 제3의 김본좌가 나온 건 당연한 이치. 청소년기에 너무 야동에 탐닉하는 건 분명 문제가 있지만, 야동을 억지로 막는다고 해봤자 야동에 대한 호기심만 더 부추기지 않을까 걱정이다. 아예 야동을 매개로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성교육을 해주면 어떨까? 그러려면 남성지배적인 내용 말고 좀 괜찮은 방향의 야동이 보다 많이 만들어져야겠지만 말이다.

서 민(의과대학) 교수

서 민(의과대학) 교수
서 민(의과대학)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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