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심리학 ⑤ 동화 <라푼젤>
캐릭터 심리학 ⑤ 동화 <라푼젤>
  • 이호연 기자
  • 승인 2013.04.12 14:23
  • 호수 13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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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는 사실 이 시대의 캥거루엄마
영화를 통해 각색된 동화 라푼젤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옛날 옛적 하늘에서 햇빛 한줄기가 땅으로 떨어진다. 그 빛 속에서 병과 상처를 치유하는 힘을 지닌 마법의 황금 꽃이 피어난다. 근처 바닷가의 한 왕국에 출산을 앞둔 왕비가 병이 들어 위독한데 모든 사람들이 마법의 꽃을 찾아 나서게 되고 왕비는 마법의 황금 꽃으로 병이 나아 황금빛 머리털을 가진 예쁜 공주 라푼젤을 출산한다. 그러나 공주의 황금머리칼에 상처를 고치고 젊음을 회복시키는 치유의 힘이 있다는 것을 아는 마녀 고델이 어느 날 성에 몰래 들어와 어린 공주를 훔쳐 달아난다. 고델은 숲에 있는 탑 속에 공주를 가두고 공주는 마녀가 어머니인 줄 알고 성장한다. 공주의 황금머리칼 덕에 마녀는 늙지 않고 젊음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다. 온 나라가 공주를 찾았으나 결국 찾지 못하고 왕과 왕비는 딸을 그리워하며 해마다 딸의 생일에 수 만개의 등을 띄워 보낸다. 라푼젤은 성장하자 자연스럽게 밖의 세상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럴 때마다 마녀는 세상이 매우 위험한 곳이고 못된 인간들이 아주 많은 무서운 곳이라고 겁을 준다. 마녀는 언제나 탑 아래에서 ‘라푼젤 머리칼을 내려다오’하고는 그 긴 머리를 타고 탑으로 올라오곤 한다. 18살이 되던 생일에 라푼젤은 세상을 구경하고 싶다고 강력하게 엄마(마녀)에게 요구한다. 마녀는 ‘이런 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아직은 너무 이르구나. 너는 모르지만 세상에는 도둑, 강도, 독초와 독벌레가 우글거리고 잘못하면 신세를 망치기 십상이란다. 그러니 이 엄마를 믿어라 너를 지켜 줄께 엄마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라고 설득한다. 그러나 자신도 알 수 없는 강력한 힘에 이끌려 탑을 빠져나온 라푼젤은 호기심에 이끌려 신기한 세상을 탐험하며 무한한 자유의 느낌을 맛보지만 동시에 두려움도 느낀다. 탑을 벗어난 흥분과 새로운 모험 속에서 왕궁의 보물을 훔쳐 달아나는 도둑(나쁜 남자)을 만나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한편 무한한 젊음과 힘의 근원인 라푼젤이 떠나간 것에 좌절하고 화가 난 마녀는 라푼젤을 찾아 나선다. 라푼젤을 찾아 낸 마녀는 ‘네가 밖에서 남자도 만나고 세상이 매우 흥미로운 곳이라고 느꼈을지 모르지만…. 로맨스 따위는 상상일 뿐이야. 세상은 너무 위험하고 넌 너무 순진하니 집으로 돌아가자’ 고 애원하지만 라푼젤은 세상과 격리된 마녀의 탑으로 돌아가기를 거절한다. 옛날 옛적 한 나라에 왕과 왕비가 살았다고 시작하는 동화 속 이야기는 보통 인생의 선사시대로 비유되는 유아시기의 엄마 아빠에 대한 은유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동화를 어린아이들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하고 얼핏 지나쳐버리면 그 속에 있는 깊은 은유와 삶의 원형적인 이야기들을 보지 못할 때가 많다. 보통 어린 유아의 마음속에서 엄마 아빠는 언제나 모든 것을 알고 있고 힘이 아주 세고 대단히 유능한 존재(왕과 왕비)로 경험된다. 동화에서 자주 엄마는 보살피고 사랑하며 생명을 주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간섭하고 침범함으로 자녀를 질식시키는 마녀로 표현된다. 지나치게 헌신하는 엄마는 언젠가는 자녀들도 엄마를 위해 살아 주기를 강요함으로 자녀를 숨 막히게 할 수 있다. 자녀의 성장과정은 보통 부모의 성숙과정과도 맞물린다. 그래서일까 부모 역시 미숙한 자신의 틀 안에 자녀들을 가두고 억압함으로 자녀들의 꿈속에 종종 귀신과 마녀로 등장하기도 한다. 마녀는 라푼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좁은 탑 속에 가두어 두고 통제하면서 자신의 세계관을 주입한다. 표면적으로는 라푼젤이 안전한 울타리를 떠나 세상에서 받게 될 상처를 과도하게 염려하면서 지켜주려고 하는 것 같지만 이면에는 라푼젤의 성장과 독립으로 겪을 자신의 허전함과 상실감에 대한 불안을 라푼젤에게 투사함으로 오히려 의존을 조장하고 성장을 방해한다. 동화가 들려주는 원형적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삶 속에서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 끝으로 라푼젤이 탑에서 나와 처음으로 만난 남자가 도둑이었다는 것도 재미있다. ‘남자는 다 도둑놈’이라는 부모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 같아 귀가 간지럽다. 김연우 정신분석심리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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