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천의 엔딩크레딧] 5. <링컨>은 됐고, <장고>나 틀어주세요 1/2
[김상천의 엔딩크레딧] 5. <링컨>은 됐고, <장고>나 틀어주세요 1/2
  • 김상천
  • 승인 2013.04.12 18:13
  • 호수 13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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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오죽 못났으면 영화에서 참된 지도자를 찾을까

 

솔직히 저는 <링컨Lincoln> 별로였습니다. 연기는 탁월했지만 영화가 너무 작위적이라 유치했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저만 이상한 놈인가봐요. 이 영화 뒤로 넘실대는 대중과 평단의 칭찬 쓰나미가 끝이 안보입니다. 아카데미 무려 12개 부문 노미네이션, 남우주연상과 미술상 수상. 그래요. 링컨이라는 재료를 스티븐 스필버그가 요리했으니 어찌 미국 입맛에 딱맞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 근데 국내 반응은 의외네요. 한겨레 조선 중앙 경향 가리지 않고 이 영화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감명 깊게 봤다”는 안철수의 한마디가 이렇게까지?


미국에서 링컨은 영웅이자 신화이자 종교입니다. 박지성이고, 이순신이며, 예수의 현신입니다. 평택대 미국학과 김남균 교수 논문에 따르면 링컨이라는 이름이 붙은 미국 도시가 22개, 카운티가 35개입니다. 학교, 보험회사, 자동차 모델, 심지어 동네 이발소에도 링컨이 쓰입니다. 미국에서 펴낸 링컨에 대한 책은 1만6천권이 넘죠.


링컨기념상엔 이렇게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 링컨 기념비를 말하라. 믿음의 모세처럼, 겸손한 모세와 같이 홍해보다 더 붉은 바다를 건너 민족을 인도한 자….” 우와, 장난 아니죠. 미국에서 링컨의 이미지는 ‘노예해방을 통해 분열과 타락의 수렁에서 미국을 구하고서 미국인의 죄를 짊어지고 대신 죽은 예수의 재림’ 정돕니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교육 받구요. 공화당에선 링컨신화를 부추기고 과장해서 오래오래 백악관을 독점하며 재미를 보고 있죠. 

 

▲ 노예해방에 대해 미국인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주는 <링컨>. 이 영화는 백인의, 백인에 의한, 백인을 위한 영화 같네요.

 

이 영화에서도 링컨은 인간적이고 정의롭고… 아무튼 온갖 좋은 건 다 갖춘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노예해방은 연방 결속, 나아가 북부의 패권 장악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증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링컨은 어디까지나 실용정치인이었습니다. 노예제를 폐지해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폐지하고 그렇지 않으면 놔두자고 주장했죠. 실제로 흑인이 거주할 아프리카 식민지안도 추진했구요. 흑인의 인권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백인이 흑인과 함께 살 수는 없다는 발상이었죠.


하지만 영화에 그런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영화 속 링컨은 법안 통과를 위해서라면 뒷거래와 협잡도 마다않지만, 그 목적만은 오로지 인도주의자로의 순수함 그 자체입니다. 의원들이 유색인 해방을 요구하는 제13수정안을 반대하자 링컨은 손바닥으로 책상을 쾅 내리치며 말합니다. “더는 못들어주겠군. 망할, 인간적 의미에서 가치 있는 일은 단 하나도 못 이루겠어. 난 이 법안이 우리에게서 노예제라는 역병을 치유하고 전쟁을 끝낼 치료제라는 걸 알고 있네. 인간존엄의 운명을 되찾을 치료제 말일세.” 저는 이 장면에서 좀 웃었습니다. 꼭 감독이 “아카데미여, 나에게 오라”하고 노골적으로 외치는 것 같았거든요.


스필버그는 아카데미에서 〈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로 최우수 감독상과 작품상을, 〈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로 감독상을 받았습니다. 이번 영화까지 포함, 상을 가져다준 영화들은 모두 애국심 마케팅의 승리죠. 휴머니즘과 애국심에 환장하는 아카데미를 공략하기에 링컨만큼 좋은 소재가 또 있었을까요.


미국이 애국심과 영웅주의에 집착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고작 200년 역사에 불과한 미국은 국민을 결속시키기 위한 공통가치가 많지 않죠. 더군다나 다민족국가니까요. 그래서 애국심과 영웅주의를 밀 수밖에 없습니다.


국내에서 이 영화에 대한 칭송이 넘치는 게 씁쓸한 이유는 사람들이 영화에서 참된 지도자의 환상을 찾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링컨을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건 현실에서 우리의 지도자들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겠죠. 저에겐 여러 모로 찝찝한 영화였습니다.


다음 주엔 진정한 노예해방의 영화 <장고:분노의 추적자Django Unchained>로 이 찝찝함을 날려보죠.

영화를 무진장 좋아하는 김상천(영어영문·4)
nounsverb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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