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천의 엔딩크레딧] 6. <링컨>은 됐고, <장고>나 틀어주세요 2/2
[김상천의 엔딩크레딧] 6. <링컨>은 됐고, <장고>나 틀어주세요 2/2
  • 김상천
  • 승인 2013.04.18 01:19
  • 호수 1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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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도 <장고>를 봤겠지?

 

<링컨Lincoln>이 백인들을 위한 노예해방 영화라면 <장고:분노의 추격자Django Unchained>는 흑인들을 위한 노예해방 영홥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노예해방에 관해 백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얘기를 해줬죠. 백인의, 백인에 의한, 백인을 위한 영화가 <링컨>입니다.


반면 <장고>는 흑인들이 보고 싶어 하는 걸 보여줍니다. 바로 흑인노예가 총잡이로 변신해 백인들 머리통을 날려버리는 장면이죠. 스필버그가 애국심이라는 수상 공식을 암기하고 있다면 쿠엔틴 타란티노에겐 레드카펫보다 붉은 피의 문법이 있습니다. 언제나 할리우드의 문법과 공식을 비웃으며 ‘죽이는’ 영화를 찍죠. 이번에도 여지없네요.


영화의 원작은 1960년대 TV시리즈입니다. 이탈리아 상남자 프랑코 네로가 주연한 서부영화죠. 마카로니 웨스턴, 혹은 스파게티 웨스턴 붐을 일으킨 유명한 작품입니다.


근데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리메이크라기엔 무리가 있고… 리부트라고 하기도 좀 그러네요. 타란티노는 60년대 <장고>에서 이름과 이미지만 따와 전혀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냈습니다. 타란티노의 손에서 장고(제이미 폭스)는 흑인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것도 노예죠. 이제껏 백인들만의 전유물이던 서부영화에 흑인 총잡이가 난입하는 최초의 순간입니다. 흑인이 쏜 총알에 백인들 머리통이 박살나며 투팍의 랩이 울려퍼지는 서부영화라니요.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이 영화를 봤겠죠?


▲ 60년대 원작의 장고 프랑코 네로가 까메오로 깜짝 등장합니다. 옛날 장고는 새로운 장고에게 이름을 묻습니다. 새로 태어난 흑인 장고는 친절하게도 D가 묵음이라는 것까지 알려주네요.


‘해방’을 논하는데 있어서 <장고>는 <링컨>보다 몇 수 위에 있습니다. 장고의 해방은 구태의연성의 해방이자 엄숙주의의 해방이기도 하니까요. 스필버그가 셰익스피어를 인용한 대사들과 미술을 통해 링컨신화를 포장하고 있을 때 타란티노는 다이너마이트 메고 폭파당하는 까메오로 출연하고 있었죠. 또 전작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Inglourious Basterds>에서 나치 유대인 학살자로 출연한 크리스토프 왈츠를 데려다 인종차별 혐오자로 변신시키는 짓궂은 유머를 던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유머는 크리스토프 왈츠가 완전히 상반되는 두 캐릭터 모두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으면서 완벽해졌죠.


노예해방에 관한 영화를 연달아보다보니 저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흑인을 착취하고 도구나 가축으로 부려먹던 그 시절 백인들은 악인이었을까? 아마 아닐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링컨>과 <장고>를 통틀어 악역은 딱 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장고>의 스티븐(사무엘 잭슨)이죠. 백인 지주 캘빈 캔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집사인 스티븐은 흑인이면서 백인보다 더 백인처럼 사고하고 더 백인처럼 행동합니다. 백인의 편에 서서 충실한 개처럼 꼬리 흔들죠. 그 대가로 백인들이 베푸는 호의, 말하자면 개밥을 받아먹으며 살구요.


당시의 미국인들은 그저 주어진 환경에 맞게 열심히 살았을 뿐이었을 겁니다. 이데올로기 안에 있으면 절대 그 이데올로기의 결함을 볼 수 없죠. 인간은 환경에 맞춰 사고하게 돼있으니까요. 그때 누가 노예제를 반대하고 들고일어났다면 오히려 이상한 취급을 받았을 게 뻔합니다. 만약 우리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요?


진짜 악인은 썩은 내를 애써 못 맡는 체하며 권력의 언저리를 어슬렁거리는 스티븐 같은 인물이 아닌가 합니다. 말하자면 우리를 억압한 일본인보다, 그 일본인들이 주는 개밥을 받아먹고 산 친일파들이야말로 진짜 악인이라 불릴만 하지 않을까요. 이 시대에도 진짜 악인은 따로 있습니다. 염치가 뭔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저 먹고 살고자 하는 사람들과는 다르죠.


여러분, 우리 사람은 못돼도 괴물은 되지 맙시다.

영화를 무진장 좋아하는 김상천(영어영문·4)
nounsverb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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