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명물 컵밥 강제철거, 그 후
노량진 명물 컵밥 강제철거, 그 후
  • 민수정 기자
  • 승인 2013.04.18 13:13
  • 호수 1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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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 컵밥에 대한 관심은 식지않았다

 

 

 

 

 

 

 

 

 

 

 

 

노량진 컵밥이 돌아왔다. 어엿한 노량진의 명물로서 자리 잡고 지난 대선에도 모 후보가 방문하여 관심 받았지만, 주변 상인들의 민원제기로 인해 올해 1월 말 컵밥 노점상 네 곳이 강제로 철거됐다. 이를 기점으로 노량진 컵밥이 사라질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우려한 것과는 달리, 벚꽃이 흐드러지는 4월 중순, 컵밥은 그 자리에 돌아와 예전처럼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편집자 주>

노량진역 1번 출구로 나와 육교 방향으로 걸어가 횡단보도를 건너면 맥도날드가 보이는데, 거기가 바로 ‘노량진 컵밥 거리’다. ‘컵밥 거리’는 맥도날드를 중심으로 노점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다. 이곳에선 가게 담벼락에 기대거나 계단에 걸터앉아 컵밥을 먹는 시민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노점 특성상 서너명 정도밖에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외 사람들은 모두 밖에서 먹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컵밥을 사먹는다. 친구와 둘이 나란히 서서 컵밥을 먹는 여학생들에게 말을 걸었다. 사람들 지나다니는곳에서 먹기에 시선이 부담스럽지는 않은지 묻자, “다들 그렇게 먹으니까 별 상관 안한다. 이거 먹으려고 부천에서부터 왔다”고 말했다. 인근에 사는 것도 아니고, 컵밥을 사먹으려고 먼 곳에서 왔다는 말에 새삼 세간의 관심이 여전함을 느꼈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더욱 진풍경이 펼쳐진다. 도로 한쪽에 늘어선 컵밥 노점의 손님들이 일제히 차도 한쪽에 비켜서서 밥을 먹고 있었다.
노점 안을 살펴보니 판 위에 지글지글 달걀이 익어가고 아주머니들은 송송 썰은 김치를 계속해서 볶았다. 또 삼겹살이나 소시지도 치이익- 소리를 내면서 익어가고 있었다. 아주머니들은 쉴 틈 없이 주문을 받고 컵에다 밥을 퍼담아 그위에 재료들을 척척 담는 것을 반복했다. 저녁시간이 되려면 멀었는데도 사람들은 길게 줄을 서고 정신없었다. 기자 역시 숙고 끝에 제일 맛있어 보이는 메뉴를 골랐다. 그런데 아뿔싸, 산 것까진 좋은데 앉아서 먹을 곳이 없다는 것을 잊었다. 하는 수 없이 차도에 일자로 쭉 서 있는 대열에 끼어들었다. 한번 먹어보니 통통한 소시지와 햄, 그리고 볶음김치와 달걀프라이가 밥과 어우러져 썩 나쁘지 않았다. 다만 밥에 비해 반찬이 많아서 좀 짰다.
다 먹어 갈 때 쯤 물을 마시며 자연스럽게 컵밥 상인들과의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그들은 카메라만 봐도 기겁했다. 철거 사태 전후로 많은 기자들이 다녀간 탓이었다. 말이라도 붙일라치면 “사진 찍지 말아 달라” 내지는 “할 말 없으니 다 먹었으면 가달라”는 말만 돌아왔다. 먼 곳에서 손님들이 소식을 듣고 찾아오는데, 언론의 관심이 도움 됐냐는 물음에도 “언론은 그냥 관심을 끊어 주는 게 도와주는 일”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물어볼게 많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세간의 관심이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물러서는 수밖에 없었다. 다른 가게도 살펴볼 겸 컵밥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만나는 시민들에게 컵밥 노점 강제철거에 대해 물었다. 인근 학원에 다닌다는 김상훈(24)씨는 “컵밥을 가끔 사먹던 학생입장에서야 아쉬운 마음이 들겠지만, 정당하게 세금내고 장사하는 분들이 피해를 입는 것도 잘못된 것”이라고 철거에 동의했다. 또 오준옥(25)씨는 “나는 컵밥을 먹지 않는다. 위생적이지 않은 것 같다. 거기다 길도 좁은데 노점들이 늘어서 있어서 통행이 불편하다. 다시 철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오 씨의 말처럼 컵밥 골목은 도로를 점유한 노점상들로 인해 사람들이 붐비는 시간엔 매우 혼잡한 것이 사실이었다.
이에 반해 서지연(17)씨는 “지난번에 왔을 때 사람들이 농성하는 모습을 봤다. 강제철거는 너무 가혹하다. 다 먹고살기 힘든데 꼭 그렇게 무력을 사용했어야 했나”고 비판했다. 또 경찰공무원 준비생인 이재욱(24)씨는 “노점상이 다른 상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잘못된 게 맞지만, 대화로 먼저 풀 생각을 해야지 강제철거라는 방식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자영업자와 영세상인들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았으면 한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하여 동작구청의 관계자는 “도로법 위반과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으므로 불법노점상이 철거 대상인 것은 변함없다”고 말했다. 또 그는“컵밥 노점이 장사를 재개하는 것과 동작구청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다들 불법으로 장사를 재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다시 컵밥 노점이 장사하는 지금, 주변 상인들의 민원은 줄었는지 묻자“지금도 노점상에 대한 민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고 답했다. 혹시 동정 여론과 관련하여 노점을 바로 철거하지 않고 말미를 주는 것이냐는 물음에 “아까 말했듯 동작구청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다만 동작구에는 컵밥 노점 외에 50개도 넘는 노점상들이 있다. 이런 노점상들을 한 번에 정리할 만큼의 행정력이 없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움직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주변 상인들은 컵밥 노점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기 위해 한 실내 컵밥 가게를 찾았다. 컵밥을 구매하며 슬쩍 의견을 물었다. 주문을 받던 사장은 “인터뷰 때문에 사는거면 도로 받아가라”며 딱 잘라 말했다. 다른 가게도 마찬가지였다. 컵밥 골목에 있는 인근 가게는 모조리 들어갔지만 “인터뷰라면 할 마음 없으니 그냥 나가달라”는 말만 돌아왔다. 구청관계자의 말대로 상당히 날 선 반응이었다. 그렇게 1시간 반을 걷고 또 걷다가 드디어 취재에 응해주는 가게를 찾았다. 컵밥 노점으로 인해 장사에 지장을 많이 받는 편이냐는 질문에 사장은 “예전엔 잘 몰랐는데 확실히 손님들이 컵밥 노점 때문에 영향을 받는 편”이라고 말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렇지만 노점이 싼 가격과 양으로 승부를 본다면, 우리는 국내산 재료와 테이크아웃을 바로 할 수 있게끔 신속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충분히 차별화 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답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인사를 하는데 사장이 주먹밥을 건넸다. 손사래에도 아랑곳 않고 고생한다며 봉투에까지 담아준 주먹밥은 인정만큼이나 훈훈했다.
 어느새 해가 지고 어둑해졌다. 포근했던 낮과는 달리 찬바람이 불어왔다. 집에 가기 전 서둘러 노량진 곳곳의 편의점을 찾았다. 예상했듯이 노량진 지점의 편의점에는 ‘컵밥’이 없었다. 직원에게 묻자 컵밥 골목에서 누가 편의점 컵밥을 사겠냐며 웃었다. 하지만 그 말인 즉슨 다른 지역에서는 컵밥을 찾아볼 수 있다는 말이었다. 실제로 동네마트나 편의점에서 쉽게 컵밥을 찾아볼 수 있다. 거기다 노량진 컵밥이 2,500~3,000원인데 비해 편의점 컵밥은 1,950~2,200원정도선으로 더 싸다. 이에 대해 시민과 인터뷰를 하자 강지영(19)씨는 “대기업의 횡포다. 심지어 가격대도 더 싸다니, 너무한 것 아니냐”며 편의점 컵밥에 대해 비판했다. 실제로 우리 대학만 해도 매점에 컵밥이 들어와 있는 실정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언론이 강제철거의 위험으로 불안에 떠는 컵밥 노점상을 조명한 것이 엉뚱하게 ‘컵밥’이라는 상품을 대중화 시켜 그들의 자리를 위협하게 된 셈이다. 언론의 관심이 독이 됐는지 득이 됐는지는 나는 모른다. 다만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컵밥 노점상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아직 식지 않았고, 노점상들과 주변 상인들 간의 신경전은 여전했다는 것이었다.


민수정 기자 freihe@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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