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심리학 7. 영화 <세 얼간이>
캐릭터 심리학 7. 영화 <세 얼간이>
  • 이호연 기자
  • 승인 2013.05.08 12:38
  • 호수 1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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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간이들의 뒷모습
이 영화는 인도 최고의 일류 명문 공대에 나름대로의 사연과 꿈을 품고 들어 온 신입생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꿈과 삶을 풀어 가는 이야기로 일면 우리의 현실과도 매우 닮아 있어 남의 이야기 같지만은 않다. 란초, 라주, 파르한, 차투르는 신입생환영회에 참석하는 것으로 기대가 큰 대학생활을 시작한다. 명문대학의 전통을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권위 있는 교수 라지쿠마르는 첫날부터 학생들에게 ‘인생은 레이스와 같다. 빨리빨리 달리지 않으면 짓밟히고 만다’ ‘뻐꾸기는 살기위해 살인(?)도 한다 경쟁해서 이기지 못하면 죽는 수밖에 없다’고 하며 공부 외의 대안은 없다고 학생들을 강하게 압박한다. 별명이 바이러스인 그는 4년 동안 한 눈 팔지 않고 죽기를 각오하고 앞만 보고 공부해야만 졸업할 수 있고 일류 직장에 취업해서 성공해야만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을 산 증인으로 제시한다. 그는 학생들을 성적으로 재단하는 엄격한 성적카스트제도를 운영하는 독재적인 교수로 정한 기일 내에 과제물을 제출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어떤 사정도 변명도 들어주지 않는다. 설혹 그런 일로 졸업의 기회를 놓친 학생이 좌절해서 자살을 한다고 해도 그건 ‘그 학생의 문제’로 치부할 뿐 자신도 자기 아들이 기차 사고로 죽은 다음 날에도 나와서 강의를 했다고 강변 한다. 이런 으스스한 공대 분위기에 신입생 란초, 라주, 파르한, 차투르가 적응해 가는 모습은 그들의 성격만큼이나 다르다. 그 중에서도 라주는 매우 가난한 집 출신으로 병든 아버지와 지참금이 없어 결혼을 못하고 있는 누나를 위해 반드시 성공해서 집을 일으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공대에 들어온다. 하지만 그런 성공 욕구가 크면 클수록 실패의 불안 역시 한없이 커져만 갔다. 그 바람에 학업에 집중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고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느낄 때마다 그는 신에게 늘 기도 했다 ‘고기도 끊고 향도 계속 피우고 착하게 살 테니 제발 도와 달라’ 고 그러나 설상가상으로 친구들과 바이러스 교수 집에 몰려가 대문에 방뇨한 사건에 맛보기로 걸려들어 바이러스 교수에게 정학통고를 받고 이런 사실이 부모에게까지 알려지게 된 상황을 그는 고민 끝에 건물에서 뛰어내림으로 좌절상황을 죽음으로 정리하려고 한다. 라주는 죽음을 자신의 고달픈 짧은 삶을 정리할 수 있는 마지막 남은 해결책쯤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죽음마저 이런 그를 만만하게 받아주지 않는다. 그리고 이젠 더 이상 피할 길 없는 죽음과의 대면에서 고통스럽게 자신을 보게 된다.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자신을 향한 가족들의 기대가 얼마나 무겁게 느껴졌는지... 성공과 미래에 대한 불안에 왜 그리 압도되었는지... 그것을 얼마나 피하고 싶었는지... 절대 실수하면 안 되는 과제는 절대 실수하기 마련이듯 절대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불안과 좌절을 얼마나 크게 불러왔는지…. 가끔 충분히 능력 있는 선수들이 실패에 대한 불안에서 약의 유혹에 빠져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 시키려고 시도하고 그런 시도들이 드러나면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오히려 더 확실하게 실패를 불러들이는 사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놀라기도 한다. 라주가 보인 학습부진 역시 그의 지나친 성공욕구에 따른 실패의 두려움에서 기인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불안과 두려움을 다루는 방식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지만 보통 대다수의 사람들은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 앞에서 도망쳐 그 상황을 모면하고 싶어 한다. 일명 회피기제이다. 라주 역시 가난한 가정을 일으켜야만 하는 절박한 욕구가 오히려 능력이 발현되는 것을 제한했던 것 같다 라주는 결국 자신의 삶이 주는 부담감을 견딜 수 없어서 창문에서 뛰어내리고 죽음 앞에서 그동안 끝없이 회피하며 살아온 자신의 삶의 방식을 비로소 대면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런 깨달음 후에도 삶을 대면하는 것은 여전히 두렵다. 하지만 라주가 자신의 두려움을 정직하게 직면하면서 대기업 면접관 앞에서 시종 솔직하고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매우 감동스럽다. 왜 휠체어를 탔고 왔는가? 하는 물음에 변명을 늘어놓기보다 좌절로 인해 창문에서 뛰어내렸노라고 대답한다. 성적이 너무 형편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성공해서 가족을 구하려고 했지만 학교에 들어와 보니 성공에 대한 불안과 집착이 너무 커져 그것이 오히려 공부를 방해했다고 답한다. 면접관들은 지나칠 정도로 솔직한 그를 인상적으로 바라보며 ‘당신이 조금 덜 솔직했으면 채용하기가 훨씬 수월 했을 것’ 이라고 말한다. 자신에게 부과 된 버거운 삶을 직면할 수 없어서 늘 피해왔고 그 방식마저 한계에 부딪쳤을 때는 죽음으로 회피하고자 했던 라주가 삶을 직면할 수 있게 된 계기가 죽음과의 직면을 통해서였다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김연우 정신분석심리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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