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에서 사라져가는 우리 학문
대학가에서 사라져가는 우리 학문
  • 이호연 기자
  • 승인 2013.05.22 12:07
  • 호수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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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과 정체성 및 존폐 논란’에 대해 취재하면서 오랜만에 지난 학기에 수강했던 영어로 된 언어학 교재를 펼쳤다. 영어단어의 뜻을 적은 필기가 언어학에 관한 필기보다 많았다. 수업 시간을 떠올려보니 교수님의 농담이라도 있던 날이 아니면 꽤 많은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을 못했다. 타국어로 우리나라 말을 배우는 것도 어려웠지만, 무엇보다 의아했기 때문이다. ‘왜 우리나라 말을 영어로 배워야 할까.’ 이 수업의 느낌은 포크로 된장찌개를 먹는 이질감이라고 말해도 좋겠다. 해당 수업에는 외국에서 온 학생도 있었다. 일본에서 온 스즈키 카나에(국어국문·2)씨는 “한국어와 영어 모두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 영어로 한국어를 배우는 수업은 유독 힘들었다”며 “차라리 한국어 책으로 수업하는 것이 외국인 학생을 위한 배려”라고 말했다. 자료조사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취재를 진행했다. 다른 대학의 국문과는 완전히 폐지된 것이 아니라, 미디어·영상·문화 등의 단어를 추가하는 형식으로 ‘개편’돼있었다. 심지어 이런 개편은 2002년부터 이뤄졌다. 2005년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류철균(이화여대), 박상천(한양대) 교수는 이러한 추세에 대해 ‘사회 변화에 발맞춘 국문학의 확장’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수년이 지났기 때문일까,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우리 대학 구성원 중에서는 단 한 사람도 이러한 추세를 ‘긍정적인 개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학생부터 교수까지 ‘대학가에서 사라져가는 한국의 얼’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다. 국문과를 개편한 다른 대학들이 말장난을 하는 것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이들은 취업률을 높이고 대학 평가 순위를 올리기 위해 사회과학에 소속되는 언론영상과 예술분야에 소속되는 문예창작, 그리고 인문학에 소속되는 국어국문학을 조합한 새로운 학과를 만들어냈다. 국어국문학은 (국)어학, 고전문학, 현대문학으로 구성되는 생각보다 분야가 세부적인 학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어문학과도, 문예창작과도, 미디어문학과도 더더욱 서로 구별된다. 배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정지홍 학회장은 성명서를 통해 “국어국문학과는 인문대학의 꽃이자 자신의 뿌리와 자신의 국어를 배우는 중요한 학과”라며 “우리나라의 국어(Korean)와 외국인이 국어를 지칭하는 한국어(Korean language)는 엄연히 다르다”고 설명했다. 인간의 본질을 다루는 인문학, 그 중에서도 민족의 얼을 이어주는 핵심은 국어다. 많은 대학들에서 타국의 언어를 가르치는 학과는 늘고 있음에도, 국어국문학이 존폐위기라는 논란에 마주하고 있음이 안타깝다. 세계화라는 사회 변화에 발맞춘 ‘국문학의 확장’을 과연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우리 대학도 올해부터 드디어 문·사·철이라는 인문학 삼형제가 짝을 이뤘다. 취업률이라는 입김 센 늑대 앞에서, 삼형제가 부디 튼튼한 벽돌집을 지을 수 있길 바란다. 이호연 기자 hostory3253@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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