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천의 엔딩크레딧] 9. <아이언맨3>가 가진 각본의 힘, <지아이조2> 보고 있냐?
[김상천의 엔딩크레딧] 9. <아이언맨3>가 가진 각본의 힘, <지아이조2> 보고 있냐?
  • 김상천
  • 승인 2013.05.22 15:45
  • 호수 13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볼거리 풍성해도 각본이 엉성하면 ‘웰컴 투 헬’이다

<아이언맨3Iron Man 3>가 800만을 넘기며 역대 외화 전체에서 <아바타Avatar> 다음으로 많이 본 영화에 이름 올렸다죠. 저도 굉장히 재밌게 봤습니다. 액션과 특수효과도 끝내줬지만 근래 오락영화 중에 이만한 시나리오가 있었나 생각들만큼 각본에 감탄했습니다.


<아이언맨3>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사람은 <리썰 웨폰Lethal Weapon> 시리즈와 <롱키스굿나잇The Longkiss Goodnight>의 각본을 쓴 셰인 블랙입니다. 코믹스 아이언맨의 열렬한 마니아인 양반이라 1,2편 제작 땐 무보수 자문으로 나서 시나리오를 다듬어주기도 했다는군요. 그 인연으로 이번에 각본과 연출을 맡았습니다. 이렇다 할 연출 성공작과 최근에 인정받은 각본이 없는데도 관계자들이 왜 그렇게 블랙 감독을 신뢰했는지 영화를 보니 이해되네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 “<아이언맨3> 각본은 지난 5년간 읽은 각본 중 단연 최고”라고 말했다는군요.

 

▲ 셰인 블랙 감독은 1,2편 시나리오를 다듬어주고 보수 대신 잘 구운 연어와 블루베리를 대접 받았다고 하네요.

블록버스터 오락영화도 각본은 중요하다, 이 당연한 사실을 다시 상기시켜준 건 <지아이조2G.I. Joe: Retaliation>였습니다. 무슨 블록버스터 액션의 실험영화인양 황당할 정도로 서사가 누락된 영화였죠. 장난감 팔아먹으려고 만든 영화인가 싶을 정도로요. 각본이 형편없으니 몰입이 안 되고, 몰입이 없으니까 뒷얘기도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이건 아니다 싶은 게 자꾸 나오면 삐딱하게 보게 되잖아요. 그래서 연신 쾅쾅 터뜨려대는 액션 시퀀스들도 중반 이후엔 관객을 지치게 만들 뿐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처럼 저도 이병헌의 “웰컴 투 헬”에 낚인 케이스였어요. 정말 서사가 지옥인 영화였습니다.

 
<아이언맨3>에 관객이 몰입할 수 있었던 건 ‘토니 스타크의 몰락’이라는 섭 플롯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토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아이언맨)는 ‘어벤져스 뉴욕사건’의 트라우마로 공황장애를 겪죠. 평생을 먹이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서 오만하게 살아온 그에게 머리 위에 웜홀이 뚫리고 외계인이 침공하던 그 거대한 힘은 충격 자체였습니다. 처음으로 죽음의 공포를 겪고 난 토니는 아이언맨 수트에 집착하죠. 집에서도 수트를 벗지 않으려하고, 불안장애와 불면증에 시달리며 수트를 가지고 이런저런 실험을 하느라 밤을 지새웁니다.


사실 이렇게 주인공을 궁지에 몰아넣는 설정은 낯설지 않습니다. 왜 서스펜스 영화에서 첩보요원들은 항상 이혼 당했거나 파혼 위기에 처해있지 않나요? 정크푸드 껍데기와 빈 술병이 굴러다니는 집에서 아이들 볼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외로운 모습이죠. 이건 드라마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주인공의 위태로운 개인사는 메인플롯의 위기와 궤를 같이합니다. 사건해결 후에도 마찬가지죠. 이혼한 아내 집 현관에서 화해하는 씬도 이젠 클리셰가 됐네요.


세계의 존망이 달려있는 히어로의 경우엔 더 해야겠습니다. 주인공을 벼랑 끝에 손톱만 걸치게 만들어야 합니다. 폭격에 의해 토니는 집(안식처)과 연구소(힘의 원천)가 붕괴당하고 바닷속(불안한 무의식)으로 가라앉고 맙니다. 그러다 자신과 닮은 어린소년(분신으로서의 자아)을 통해 수트라는 껍데기를 벗고 수트를 만드는 정비공(mechanic)으로 거듭나죠. ‘수트가 아이언맨인가, 내가 아이언맨인가’를 고민하던 토니는 결국 “나는 아이언맨이다”라는 오그라드는 워딩을 날리며 부활에 성공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불꽃놀이로 이를 축하할 정도의 오만함도 되찾죠. 그러면서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멋진 여자의 마음을 홀리는 ‘졸라 부러운 형’의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 사실 진짜 끝판왕은 페퍼였죠. 역시 여자들이 제일 무섭습니다.

딱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왕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세계관을 공유하기로 했으면 헐크 등 다른 영웅들의 모습도 살짝 비춰줬으면 어땠을까 합니다. 아이언맨이 만다린(벤 킹슬리)에게 당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도 다른 영웅들은 보이지 않고 사람들 역시 이들을 찾지 않는다는 설정은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아이언맨 사망소식을 전한 뉴스화면 자막에라도 다른 영웅들의 존재를 살짝 언급했다면 완성도가 더 높아지지 않았을까요.

영화를 무진장 좋아하는 김상천(영어영문·4)
nounsverbs@naver.com

 

김상천
김상천 다른기사 보기

 nounsverbs@naver.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