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천의 엔딩크레딧] 10. <위대한 개츠비>를 보고 나온 남자 둘의 대화
[김상천의 엔딩크레딧] 10. <위대한 개츠비>를 보고 나온 남자 둘의 대화
  • 김상천
  • 승인 2013.06.01 14:53
  • 호수 13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자들에겐 잊지 못할 ‘썅년의 추억’이 있다


  “이래서 사람들이 데이지더러 썅년이라 그랬구나.”
  2시간 30분간 좌석에 눌린 뒷머리를 띄우며 내가 말했다. <건축학개론>을 본 남자들은 안다. 세상의 어떤 여자들은 저 천박한 쌍시옷 발음으로 부르는 게 이름보다 적절하다는 걸.
  “데이지는 원작에서부터 아주 썅년이었잖아.”
  친구가 맞장구쳤다. 물론 친구도 <건축학개론>을 봤고, 그에게도 잊지 못할 ‘썅년의 추억’이 있다.
  “영화 보는데 자꾸 옛날 걔 생각나서 짜증났다. 왜 썅년들은 하고다니는 게 다 비슷비슷하지?”
  “맞아. 나도 데이지 볼 때마다 골은 비어가지고 밤마다 명품 매고 클럽 가는 낙으로 사는 얘 생각나더라. 걔랑 스타일이 비슷해.”
  “누구? 서OO?”
  “헐 어떻게 알았지? 너도 걔 생각나디?”



  밤바람도 시원하고 해서 친구네 집까지 걷기로 했다. 그 앞에 우리 집 가는 버스가 다닌다. 내가 다시 물었다.
  “근데 생각보다 볼만하네. 왜 다들 재미없다 그러지? 여자친구도 별로라던데.”
  “공감 정서가 없어서 그래. 클럽, 파티, 이런 걸 즐기는 사람이라야 재밌지 아니면 지루할걸. 댄스뮤직도 좀 알아야 되고. 그리고 당연히 여자들은 싫어할 거야. 우선 여주인공부터가 썅년으로 나오잖아. 남자들이야 다들 통한의 ‘썅년의 추억’이 있으니 감정이입이 되지만. 여자들보단 남자들의 판타지야 이 영환.”
  “하긴 여자친군 어장관리나 클럽 이런 거랑은 거리가 먼 얘니까. 근데 마지막에 나온 목탁 비트 제목이 뭐지? 제이 지가 프로듀싱 했다더니 음악 진짜 좋더라. 힙합이 잘 어울리던데.”
  “21세기의 재즈는 힙합이니까. CG도 좋고 전체적으로 현대에 맞게 재구성 잘 했어.”
  “맞아, <물랑루즈> 감독이 1400억 넘게 써서 4년 동안 찍었다더니 색감이나 작은 거 하나하나 공들인 티가 나더군. 아 근데 나도 보면서 계속 생각나더라, 즐기면서 나 이용해먹던 그 어장관리 썅년.”
  “누구? 너 그런 얘 얘긴 한 번도 안했잖아?”
  “있어 어렸을 때. 내가 한 2년 걔 쫒아다니면서 무슨 날마다 선물 들고 걔네집 앞에서 기다렸지.”
  “크크크 병신, 너도 그랬냐. 난 아직도 펄펙데이 나오면 짜증이 솟구쳐.”
  “푸하하. 오잇쓰~ 써취어 펄펙데이~ 암글랫 아이 스팬잇 윗유.”

  나는 거리가 꽉 찰만큼 큰 소리로 루 리드의 ‘Perfect Day’를 불렀다. 맞은편에서 지나가던 여자가 힐끔거렸다. 이 노래는 친구의 전 여자가 친구를 차고 나서 걸어둔 미니홈피 배경음악이었다. 고졸인 친구는 고대생이랑 바람난 그 여자 때문에 학벌 콤플렉스가 트라우마로 남았다. 물론 나에겐 언제 놀려먹어도 재밌는 소재였다.
  “난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게, 걔한테 차이고 나서 책은 왜 선물했냐? 그전에 지가 사준 아이팟은 택배로 돌려달라고 난리쳐놓고. 기억나지 너, 『구해줘』 택배로 보낸 거? 책 제목도 구해줘가 뭐냐 찌질하게 진짜, 어휴 병신.”
  “귀욤 뮈소 이 개 쓰레기. 그때 이후로 내가 젤 싫어하는 작가 1위다. 미사여구로 포장한 쓰레기….”
  친구는 애꿎은 귀욤 뮈소한테 약 5분간 욕을 퍼부었다. 그렇게 매몰차게 차였는데도 그 여자 욕은 잘 하지 않는다. 저렇게 순해 빠졌으니까 당하고 다니지 쯔쯔.

  “근데 디카프리오 형은 나이 먹어도 멋있지 않냐?”
  민망한지 말을 돌린다.
  “연기도 잘하더라.”
  “그래? 난 이 형도 늙었구나 싶던데. 아직도 멋있긴 한데 아저씨야 이제 피부색이. 그리고 확실히 몰입도 좋은 영화는 아니었던 게 자꾸 다른 영화랑 겹쳐 보였어. 억양은 완전히 <장고>의 캘빈 캔디였잖아. 초반에 사기 칠 땐 <캐치 미 이프 유 캔>, 데이지 뒤에서 껴안고 있는 장면은 <타이타닉>, 사고 난 뒤에 불안해하는 표정은 <갱스 오브 뉴욕>, 파티에서 턱시도 입은 장면은 <인셉션>, 호텔에서 화내는 장면은 <바디 오브 라이즈> 이런 식으로. 그러고 보면 연기를 못할 수가 없었네, 다 해본 거니까. 여러 모로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에 이 형만한 배우가 없었겠군. 얼마 전엔 ‘디카프리오와의 우주여행권’이 17억에 팔렸다던데. 오, 드림 드림 드림.”
   “디카형도 곧 썅년들 중에 하나랑 결혼하겠지? 하긴 여자들 욕할 것도 없어. 트로피와이프 좋아라하는 남자들이 썅년을 만드는 거겠지.”

 

영화를 무진장 좋아하는 김상천(영어영문·4)

 

 

김상천
김상천 다른기사 보기

 nounsverbs@naver.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