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볼펜]판타지와 현실
[백색볼펜]판타지와 현실
  • 조수진 기자
  • 승인 2013.06.08 03:27
  • 호수 1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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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에서 벗어나 현실 직시하자

◇필자는 주변에서 『해리포터』 ‘덕후’라고 부를 정도로 광팬이다. 시리즈를 다 모은 건 기본, 시리즈 마다 최소 100번 이상씩은 읽은 것 같다. 봤던 걸 또 보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100번 이상은 필자가 생각해도 좀 너무한 것 같다. 어떻게 100번 이상이나 본 걸까. 스토리가 좋아서? 물론 당연한 얘기다. 아님 주인공들이 멋져서? 음, 멋지기 보단 찌질함을 갖춘 용감한 주인공이라고 해두자. 그럼 대체 뭘까. 필자는 항상 어렵고 힘들 때마다 『해리포터』를 무의식적으로 찾았다. 현실에서는 눈물 나게 힘들지만 『해리포터』를 보면서 잠시나마 필자가 호그와트에 다니는 것 같고, 볼드모트와 “스투페파이!”를 외치며 싸우는 상상을 한다. 『해리포터』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였다.

◇세상 사람들 저마다 자신만의 도피처가 있을 것이다. 씨네21 기사에 따르면 최근 이탈리아 개봉작 중 최고의 화제작은 정치영화라고 한다. 지난 2월 24일, 25일에 치렀던 이탈리아 총선 이후 개봉한 영화들이라고 한다. 총선 이후 아직까지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지 못한 상황에서 국민들의 심리를 대변해주는 현상이다. 영화를 보며 잠시나마 현실을 잊고 감동을 받을 수 있는 리더를 보며 위로받는다. 우리나라도 <7번방의 선물>(2012) 등 뻔하지만 Fun한 소재가 각광 받는다. 정치가 제대로 굴러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영화를 통해서라도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국민들의 도피 행각인 것이다.

◇국민뿐만 아니라 정부도 판타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단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자극적인 말을 자제 해달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질 구출 작전”, “개성공단은 북한의 달러 박스” 발언 등 보여주기식 판타지에 빠져 결국 중단사태에 이르렀다. “대화를 하자”는 말도 구체적인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정부도 알고 있을 것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성명 발표 때 만찬에 참석한 새누리당 의원들이 “(국방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공군 전투기, 해군 잠수함도 타보시라”고 건의했고, 박 대통령은 “국회 국방위원 할 때 탱크를 타봤다”고 답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탱크 탑승 발언은 지금 우리나라가 얼마나 보여주기식 판타지에 빠져있는지 여과 없이 보여준다.    

◇문화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지금 정부가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지 감독할 사람은 국민이다. 어지러운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하면할수록 현실은 더욱 어려워진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형식에 사로잡힌 판타지같은 대응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민들에게 강경 대응을 보여주기 위해 대통령이 ‘탱크 탑승’을 하는 것보다는 “대화하자”는 발언의 구체적 대안을 모색하거나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싱크 탱크’ 국가미래연구원의 정치적 특혜 시비를 밝히는 것에 힘쓰는 게 어떨까. 『해리포터』를 도피처로 마련해 놓은 필자가 할 말은 아니지만 이제 판타지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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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진 기자
조수진 기자

 ejaqh2@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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