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볼펜] 말말말
[백색볼펜] 말말말
  • 조수진 기자
  • 승인 2013.06.08 03:35
  • 호수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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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다르고 ‘어’ 다르다

◇말은 신기하다. 단어 하나로 긍정을 나타내기도 부정을 나타내기도 한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 문장들을 보면 ‘않다’라는 단어 하나의 차이임에도 그 뜻은 완전히 다르다. 또한 직접문을 쓰느냐 간접문을 쓰느냐 또한 뉘양스에 따라 문장의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 ‘자료처리 좀 빨리 해서 보내줘’라는 직접문과 ‘내가 그 자료가 오늘 꼭 필요해서. 자료 처리 잘 부탁할게’라는 간접문. 어떤 문장이 당신의 마음을 움직이는가?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이런 말의 특성을 잘 이용한다면 본인에게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으며 자신의 의사전달도 극대화 시킬 수 있다. 그러나 잘 못 사용한다면 인생 혹은 인간관계에 ‘재난’이 닥칠 수도 있다.

◇필자만 해도 말의 특성을 잘 못 사용해 애를 먹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자신의 단점이 뭔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토로한 친구에게 “니가 이런 점이 문제가 있네”라고 직접적으로 말해 친구의 기분을 상하게 한 적도 많다. “정말 힘들겠다. 이런, 저런 점이 너의 장점이지만 이런 점이 너의 단점이기도 해”라며 돌려말 할 수 있는 것인데 말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처사였다. 이 후 몇 번 더 이런 상황이 반복됐고 친구와 관계가 소원해져 다시 돌리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이 뿐만이 아니다. 수업시간, 평가 발표할 때 순간적으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탄핵시켜야 한다”는 말을 “없애 버려야 한다”고 발언해 한동안 “과격하다”, “좌빨이다” 등의 놀림을 받아야 했다. 물론 학교에서니까 이렇게 넘어갔지만 공식적인 자리라고 생각해보면 정말 아찔하다.

◇앞에서 말 했듯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과 뉘양스는 매우 중요하다. 잘 사용하면 득이 되지만 잘 못 사용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성질을 다 보여준 대표적인 예가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일정 수행 도중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는 윤창중 전 대변인이다. 성추행 당한 피해 여성이 “윤 전 대변인이 엉덩이를 움켜쥐었다(grab)”는 진술에 움켜쥔게 아니라 허리를 한 차례 “툭 쳤다”고 반박했다. 움켜줬는지의 여부가 이번 사건의 가장 중요한 초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윤 전 대변인은 ‘grab’이 아니라 ‘툭 쳤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더욱 재밌는 건 자신의 행동을 조금이라도 세탁하기 위해 피해 여성을 ‘인턴’이 아닌 ‘가이드’로 얘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오히려 피해 여성의 전문성을 의도적으로 폄하하려는 게 아니냐는 여론이 들끓으며 부적절한 호칭 문제까지 수면 위로 올랐다. 단어를 단어로 무마하려다가 그 단어에 되려 당한 ‘자승자박’이다.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예가 또 하나 늘어났다. 좋아해야 하는 건지 울어야하는 건지 알 수 없다. 윤 전 대변인을 보고 있자니 윤진숙 해수부장관이 그립다. “모르겠습니다. 하하.”, “해양~크크” 등 말로 적어도 국민에게 큰 웃음이라도 선사하지 않았는가. 말, 참 미묘하고도 분명하다. 

 <秀>

조수진 기자
조수진 기자

 ejaqh2@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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