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구렁이 1. 순간이동
능구렁이 1. 순간이동
  • 김윤숙 기자
  • 승인 2013.09.03 15:31
  • 호수 1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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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비와 자각은 이제 안녕
 호기심에 친구들과 번지점프를 하러 갔을 때였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됐는데 마음의 준비가 안 된 나를 직원이 밀어버린 것이다. 떨어지면서 ‘죽는 거 아냐’하는 순간, 땅바닥으로 순간이동을 했다. 영화 <점퍼> 속 한 장면처럼 말이다.  <편집자주> 

 개강과 함께 겪었던 지옥철은 이제 나와는 먼 이야기이다. 전엔 통학거리가 긴 까닭에 1교시가 있는 날이면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등교준비를 해야 했다. 하지만 순간이동 능력이 생긴 지금, 버스비가 인상됐지만 교통비도 걱정 없다. 집에서 학교까지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이제 더 자주 만나러 오라며 당부하신다. 성인이 된 이후로 방문한 적 없었던 시골 외할머니 댁에 가기도 쉬워 졌다. 다가오는 추석 때 우리 집은 긴 시간을 도로에서 보내지 않아도 된다. 진지하게 추석 때 멀리 있는 고향까지 데려다 주는 사업을 생각 중이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내가 빠르다는 이유로 항상 쓰레기를 버리거나 무언가를 사오는 심부름은 내 담당이 됐다.

 순간이동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억울한 오해도 받았다. 내가 사는 동네 주변 가게에 도둑이 들었는데, 문을 연 흔적도 없이 돈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혹시 모른다며 나를 추궁했다. 눈물 나도록 억울할 따름이었다. 이 사건이 퍼지자 주변 가게들은 매장 안에 CCTV를 설치했다. 반면 소방서에서 구급대원으로 일하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기도 했다.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한 경우 환자를 현장에서 바로 병원으로 후송해 달라며 말이다.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지만 상처입고 피 흘리는 사람을 보는 것이 겁이 나고 무서웠다. 결국 죄송하다며 거절했지만 간절히 내 능력을 바라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하니 뭉클해졌다. 자동차, 지하철, 버스 등의 교통수단을 이용할 필요가 없지만 때때로 교통수단을 이용한다.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몸을 기대고 지나가는 풍경을 보는 것도 좋기 때문이다. 또 바람을 가르며 운전하는 것도 재미있다. 교통비를 아낀 돈을 모아 스쿠터를 구매했다. 부모님께 쓸데없는데 돈 쓴다고 잔소리를 들었다. 물론 아직은 쓸 일이 없지만 다가오는 겨울 방학엔 순간이동을 하지 않고 스쿠터를 타면서 여행할 계획이다.

 새로운 생활에 익숙해지고 오랜만에 몸무게를 재보니 전보다 더 늘어나 있었다. 걸어 다니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서 살이 찐 것이다. 쓰린 가슴을 안고 헬스장에 다니기로 했다. 우선 집에서 헬스장까지 걸어서 다녀왔는데 슬프게도 확실히 몸이 무거운 느낌이었다. 앞으로 운동할 생각을 하니 걱정이다. 내 몸 지방덩이들도 순간이동해서 지구상 어디론가 가버렸으면 좋겠다.

김윤숙 기자 flyingnabi@dankook.ac.kr

김윤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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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lyingnabi@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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