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천의 엔딩크레딧] 13. ‘The Great’ <에드 우드>
[김상천의 엔딩크레딧] 13. ‘The Great’ <에드 우드>
  • 김상천
  • 승인 2013.09.10 23:21
  • 호수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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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케인>보다 위대한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

모든 종류의 창작물을 막론하고 유독 영화라는 장르엔 보는 사람을 황당하게 만들만큼 졸작인 작품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영화가 전방위 종합예술이라 막상 완성도있게 만들자면 어려운 까닭일까요. <그들은 히틀러의 뇌를 보관해두었다>라든지 <아메리칸 북두권> 같은 어이없는 영화들은 대체 어떻게 세상에 나오는 건지 모르겠어요. 돈과 인력이 필요한 게 영화제작이라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하려면 인생의 한 시절과 통째로 교환해야 하는데도 말이죠. 영화엔 사람을 홀리는 묘한 마력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죠. 1980년 맨해튼에서 열린 ‘최악의 영화 페스티벌’에서 ‘역사상 최악의 영화감독’으로 꼽힌 에드워드 D. 우드 주니어의 대표작이자 ‘영화 역사상 최악의 영화’로 선정된 작품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팀 버튼의 <에드 우드>가 바로 이 에드워드 감독의 전기영화입니다.

▲에드워드 역을 기가막히게 소화한 조니뎁. 음 왜 존 박이 떠오르는 걸까요.

 에드워드(조니 뎁)는 영화를 진짜 겁나게 못 만들었습니다. 10여 편을 찍다 54살의 나이로 세상을 등지기까지 평생 대중과 평단의 조롱을 받았죠. 시사회에선 참다못한 관객들이 음식물 쓰레기를 집어던지고 표값을 돌려달라고 항의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당시 대세던 오컬트 영화를 주로 찍었는데, 만드는 과정부터 결과물까지 그 자체로 코미디영화가 따로 없습니다. 에드워드 이 양반은 그저 자신이 영화를 찍는다는 사실만으로 더없는 행복을 느끼는 인물이었습니다. 수면에 비친 자신을 보며 자아도취에 빠지듯 에드워드는 스크린의 자기 영화를 보면서 감동에 벅차 어쩔 줄을 모르죠.

모든 씬은 무조건 한 번에 오케이가 났습니다. 심지어 배우가 퇴장하다 문에 부딪혀도 “퍼펙트!”를 외치죠. 제작진이 이거 정말 괜찮은 거 맞냐고 물어보면 “자연스러워서 좋다”고 말합니다. 영화 만드는 게 너무 행복하다보니까 그저 다 좋을 수밖에요.

▲<글렌 혹은 글렌다>의 엔딩을 재현한 장면. 배우이자 에드워드의 여자친구였던 돌로레스 풀러(사라 제시카 파커)는 후에 작곡가로 변신해 엘비스 프레슬리의 히트곡 2곡을 만들게 됩니다.

 돈이 없으니 자기가 연출, 제작, 각본, 편집 다 합니다. <글렌 혹은 글렌다>에선 설상가상 주연까지 맡았습니다. 여자옷을 입으며 흥분하는 복장도착자(transvestite)를 다룬 B급영화였는데, 실제로 에드워드 자신이 복장도착자였거든요.

▲여장한 조니뎁. ㅋㅋㅋ

 다른 제작사 창고에서 정기적인 소품서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괴물의 신부>에 나온 대형문어도 실제로 <성난 파도>라는 남의 영화에서 사용된 소품을 훔쳐다 쓴 것이었죠. 다른 영화에서 찍어놓고 안 쓴 필름을 가져와 자기 영화에다 얼토당토않게 이어붙이기도 합니다. 무허가로 촬영했기 때문에 찍다가 경찰이 오면 장비 챙겨서 도망치거나 기독교단체한테 제작비를 타내기 위해서 스텝 전원이 단체로 세례를 받기도 하죠.

▲<괴물의 신부> 포스터와 문제의 대형문어.

 필름을 들고 대형 배급사에 찾아간 일화도 유명합니다. 에드워드가 온 힘을 다해 찍은 영화 <글렌 혹은 글렌다>를 본 배급사 직원은, 영화가 얼마나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었던지 회사 동료가 자기를 골탕 먹이려고 장난치는 거라 생각하죠.

<에드 우드>는 이런 코믹한 에피소드들로 가득한 영화입니다. 바에서 <시민 케인>의 오슨 웰즈를 만나는 시퀀스만 빼고 다 실제로 있었던 일들이라 더 우습죠. 그런데 영화를 보며 웃다보니 낄낄거림이 조금씩 쓴웃음으로 바뀌네요. 문득 묵직하게 아려오기도 합니다.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느낀 감정과 비슷한 거 같습니다.

에드워드는 잠자리에 누워 혼잣말 하듯 애인에게 묻습니다.

“내가 착각하는 거면 어쩌지? 나한테 재능이 없는 거라면 어떡하지?”

불편한 진실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특별한 재능이 없습니다. “모두가 특별하다”는 말은 성립될 수 없죠. 모두가 평범하다는 말이 되니까요. 어쩌면 우리도 에드워드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무섭죠.

 

▲쓸쓸한 황혼의 배우 벨라 루고시를 완벽하게 재현한 마틴 랜도.

 그런데 놀랍게도 에드워드의 영화들은 지금 컬트 팬들로부터 열광적인 추앙을 받고 있습니다. 재미없는 그의 영화들은 지금도 수차례 재상영 되며 박수갈채를 받죠. 평론가들 말대로 에드워드의 영화가 가장 재미없는 영화이기 때문일까요? 에드워드 말고도 재미없는 영화를 만든 사람은 무수합니다. 허나 세상의 멸시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그토록 순수하게 정진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자신의 꿈을 진지하게 대하는 태도야말로 무서운 재능이 아닐까요.

▲에드워드와 벨라 루고시.

 
영화 좋아하는 김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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