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법한 ⑫ 공권력을 감시해야 하는 이유
있을법한 ⑫ 공권력을 감시해야 하는 이유
  • 이석배 교수
  • 승인 2013.09.11 20:31
  • 호수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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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법한 ⑫ 공권력을 감시해야 하는 이유

학생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2002년 여대생 공기총 청부 살해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Y기업 회장의 부인 Y씨가 형집행정지를 받아 현재 호텔 같은 병원에서 호화생활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 시민들의 공분을 일으켰다. 그와 함께 형집행정지를 받았던 사람들이 마치 ‘힘있고, 돈있고 빽있는’ 소위 권력층들이라는 분위기가 퍼져갔다.
형집행정지는 법원으로부터 징역 등 자유형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되어 교도소 등에 수감되어 있는 수형자에게 특정한 사유가 있을 때 그 형의 집행을 정지하는 제도이고, 「형사소송법」 제470조, 제471조는 형집행정지의 사유, 절차, 방법 등을 규정하고 있다. 본래 형집행정지제도는 인권보장의 측면에서 인도적인 이유로 도입되고 시행되고 있는 제도로 수형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형의 집행 목적 이외에 어떤 불이익도 주지 않기 위한 제도이며, 제도 자체가 문제가 있거나 목적이 불순한 제도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생소한 형집행정지로 형벌을 받지 않고 교정시설 밖에서 생활하는 대기업회장이나 국회의원들을 보면 제도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분위기는 형집행정지의 절차가 너무 쉽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는 생각에 국회에는 형집행정지 절차를 강화하는 입법안도 제출되었다. 언론과 인터넷에서도 죄를 지은 죄수가 질병의 치료를 위해서 교정시설 밖으로 나온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퍼져있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다만, 여기서 우려스러운 것은 수형자들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생각이다. 수형자는 죄를 지은 사람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죄를 지은 것으로 법원에서 판결을 받은 사람이다. 수형자는 우리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도 모두 범죄자가 될 수 있다. 중범죄는 아니지만 길에서 돈을 주워 가지거나, 다른 사람의 뒷담화를 하는 것, 또 교통사고로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도 형법상 범죄행위가 될 수 있다. 우리도 모두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범죄를 저질렀다면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죄를 지었다고 해서 교정시설에서 질병에 대한 치료도 받지 못하고 고통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형집행정지는 범죄에 대한 형벌이외에 다른 고통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도입된 제도이다. 제도의 취지는 인도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문제는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이다. 소위 권력층 수형자는 쉽게 형집행정지를 받고, 그렇지 못한 수형자는 교정시설에서 죽어가게 하는 일은 법이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것이다. 법이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하고 적용에서 납득할 수 없는 예외를 인정해서는 안된다. 제도의 취지상 정말 아픈 사람들이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그것은 살인범이나 어떠한 흉악범도 마찬가지이다. Y씨의 형집행정지로부터 불거진 시민들의 관심과 분노가 오히려 정말로 형집행정지가 필요한 수형자들의 인권을 침해하지는 않을까 우려가 앞선다.
Y씨에 대한 공분은 형집행정지제도와 ‘살인자가 어떻게 밖에 나와서 생활하느냐’가 아니라 형집행정지를 받을 정도로 보이지 않는 사람이 소위 권력층이라는 이유로 교정시설 밖으로 나와 생활할 수 있도록 한 사람들에게 향하기를 기대한다. 이것은 우리가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공권력을 계속 감시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석배(법과대학) 교수
이석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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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pcomx6@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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