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천의 엔딩크레딧] 14. 하늘에 대한 사랑 <바람이 분다>
[김상천의 엔딩크레딧] 14. 하늘에 대한 사랑 <바람이 분다>
  • 김상천
  • 승인 2013.09.17 22:25
  • 호수 1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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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미야자키, 아름다운 환상들 고마웠어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작 <바람이 분다>는 이전 작품들과 조금 달랐습니다. 꼬마들을 무릎에 앉히고 팔로 감싸 안아가며 동화를 들려주던 할아버지가, 어느 날 사뭇 진지한 얼굴로 오늘은 좀 특별한 얘기를 들려주마 하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었달까요.

민감한 소재 탓에 논란의 중심에 선 영화이기도 하죠. 영화는 태평양전쟁에 쓰인 전투기를 개발한 실존인물 호리코시 지로를 그리고 있습니다. 젊은 지로의 실제 삶에 동명 연애소설 『바람이 분다』의 연애담을 붙인 구조죠. 지로가 개발한 전투기 ‘제로센’은 후에 그 유명한 카미카제에 쓰였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얽혀있는 논란들을 미리 알고 간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아무 사전지식 없이 극장에 앉았다면 저도 당혹스럽고 불쾌했을 것 같습니다. 전쟁피해국의 후예로서 전쟁무기 제작자의 삶을 이토록 아름답게 그리는 정서를 달갑게 보기란 힘든 일이니까요. 소재의 논란을 미리 알고 갔기 때문에 오히려 한발 떨어져서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작품만 놓고 말하자면, <바람이 분다>는 미야자키라는 거대한 비행기가 창공에 그린 비행운 같은 영화였습니다. 아름다운 퇴장이었습니다. 장면 하나하나 깊이가 느껴졌고, 거장의 은퇴작에 걸맞는 절제미가 묻어났습니다. 과잉을 경계하는 차분함이 영화의 톤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영화는 널뛰는 시간을 슥 지나가는 대사 한마디로 처리해버립니다. 관객은 ‘아, 또 몇 년이 지났나?’하고 추측하며 보게 되죠. 심술궂다고까지 느껴지는 이런 무심한 연출방식은 미야자키 감독 스스로 어깨의 힘을 빼고자 한, 일종의 기교에 대한 경멸로 보였습니다.

▲말 그대로 같은 꿈을 꾸는 두 엔지니어는 꿈 속 세계를 공유하게 됩니다. 인물들의 무심히 정진하는 삶의 태도,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구성, 거기다 댄디한 옷차림까지. 미야자키도 무라카미 하루키를 즐겨 읽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왜 하필이면 이런 소재를 택했을까’하는 속상한 의문은 떠나지 않습니다. 저는 크게 두 가지로 해석했어요. 첫째는 미야자키가 자국 국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건네며 떠나고 싶었구나, 라는 추측입니다. 영화는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폴 발레리의 시로 시작합니다. 그리곤 비행기를 만드는 지로의 시점으로 관동대지진과 세계2차대전을 거치며 몰락하는 (일본인 입장에선)아픈 역사를 보여주죠. 끝에선 다시 “그래도 살아가라”는 나호코(지로의 여인)의 대사로 마무리됩니다.


두 번째로는 미야자키 감독이 마지막으로 해보고 싶은 거 다 했구나, 라는 느낌이었습니다. ‘하늘을 나는 행위에 대한 환상’은 미야자키 우주의 중심입니다. 돌이켜보면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부터 <천공의 성 라퓨타> <붉은 돼지> 등 미야자키 감독의 초기작은 온통 하늘에 대한 동경이었죠. <이웃집 토토로> <마녀배달부 키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다양한 소재의 작품들로 정진하면서도 하늘을 나는 장면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하나같이 찬란하게 그렸죠.

어쩌면 일본이라는 좁아터진 땅덩어리에서, 그나마도 지진의 공포 속에 살아온 미야자키에게 하늘에 대한 동경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상상 속에서 좁은 땅을 버리고 높이 솟아올라 파랗고 하얀 무한 속을 비행하는 어린 미야자키를 어렵지 않게 그려볼 수 있습니다. 은퇴작에선 마지막으로 마음껏 날아보고 싶었을 거라 생각되네요.

거기다 미야자키는 ‘밀덕(밀리터리 오타쿠)’으로 유명합니다. 회의중에도 항상 비행기나 탱크 같은 걸 그리며 낙서한다죠.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원작엔 없는 전쟁 시퀀스를 넣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폭격씬은 레이아웃도 직접 그렸다는군요. 일본 밀덕들 사이에서 단연 최고 인기인 제로센을 다룬 이유를 알만합니다.

영화엔 “우리는 그저 비행기를 만들고 싶을 뿐”이라는 대사가 반복됩니다. 처음엔 이 말이 미야자키 감독의 편리한 변명 같아서 거슬리더군요. 그런데 아무래도 “이라크를 침공한 나라엔 갈 수 없다”며 아카데미 시상식에 불참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과 중국에 사죄해야 한다”고 말해온 미야자키 감독이 이토록 쉽게 역사 문제를 치워버렸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웠습니다.

▲처음 미야자키의 '원령공주'를 봤을 때 느낀 충격을 잊을 수 없습니다. 당시엔 불법이라 검은 비닐봉지에 쌓인 해적판 비디오였는데… 그야말로 넋을 잃고 TV 화면에 빨려들었습니다. 그 느낌을 지금 돌아보면 내 우주가 쭉쭉 뻗어나가 확장되는 이미지가 그려집니다. 어린 자아에게도 세계는 내가 상상할 수 없을만큼 넓다는 걸 알려준 제 인생 최고의 애니였습니다.

저는 이 대사를 통해 주인공 지로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로는 사랑에 빠진 사람일 것입니다. 비행기와 말이죠. 사랑에 빠진 사람은 환상을 깨뜨릴지 모를 모든 것들을 부정하고 쳐다보지 않으려 합니다. 사랑을 보호하는 것은 자기합리화의 견고한 유리벽입니다. 지로가 비행기를 만드는 건 자신도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사랑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그리고 싶었다”는 미야자키 감독의 말은 나호코와 지로의 사랑만을 얘기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영화 좋아하는 김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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