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법한 ⑬ 무죄추정의 원리
있을법한 ⑬ 무죄추정의 원리
  • 최형균
  • 승인 2013.09.22 22:09
  • 호수 1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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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국가정보원의 댓글사건과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등으로 떠들썩하다. 신문, 방송은 물론 사람들도 각자가 생각하는 대로 마치 모든 것이 확인된 것처럼 비난을 퍼붓는다. 이석기의원은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비난을 받고, 국가정보원은 검찰의 압수수색영장 집행을 거부하여 논란이 되고, 검찰총장은 뭔가 께름칙한 일로 사퇴의사를 밝혔다. 언론에 한번 보도되고 나면 사람들은 그것을 사실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실제로 그러한 사실이 무죄로 드러나거나 사실이 아닌 경우도 종종 있다.
우리 헌법과 형사소송법은 형사피고인은 유죄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 무죄로 추정된다고 하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대부분의 형사사건이 무죄로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무죄추정의 원칙은 형사재판절차의 특성상 불리한 위치에 놓여 인권이 유린되기 쉬운 피의자와 피고인의 지위를 옹호하여 불이익을 최소한에 그치게 하자는 헌법이념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러한 무죄추정의 원칙은 흉악한 범죄자라 하더라도 당연히 적용된다. 따라서 이석기 의원은 물론이고, 국정원 댓글사건 관련자들도 법원의 유죄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
과거 우리는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보았듯이 약간의 심증만 있으면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하고, 위법한 절차를 통하여 얻어낸 증거로 유죄판결을 했던 불행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조금만 의심이 가면 무죄로 추정하는 것이 아니라 유죄로 판단하여 무리한 수사를 하고, 수사기관의 무리한 수사는 수사기관과 여론이 갖는 심증과 달리 증거를 찾지 못했을 때 나타난다. 민주화된 국가에서 형사사법의 목표는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99명의 범죄자를 놓치더라도 무고한 한명의 시민을 처벌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이러한 사례들과 관련하여 의미를 갖는다.
최근에 낙지살인사건에 대하여 무죄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언론과 네티즌들은 아직도 무죄가 아니라고 믿는 듯하다. 언론에서 피해자의 부모, 지인들의 인터뷰를 보면 여러 가지 정황이 유죄임을 확신하는 것으로 비추어진다. 물론 피고인이 범인이라는 심증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믿는다면 비난의 대상은 피고인이나 법원이 아니라 수사기관, 즉 경찰과 검찰이어야 한다. 이 사건의 무죄판결 이유는 증거불충분이다. 다시 말하면 피고인이 살인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수사기관이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살인을 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여 유죄판결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입증이 부족한 경우 그 책임은 피고인이 아니라 국가와 수사기관이 져야한다.
이석기 의원의 묵비권행사도 국정원장의 압수수색거부도 모두 법적으로 본인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와 권한을 행사한 것이다. 물론 국회의원, 국가기관의 장이라는 지위에 비추어 보면 이러한 행위가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피의자로서 자신의 권리와 국가기관의 장으로서 권한 행사를 법적으로는 비난할 필요는 없다. 아니 비난해서는 안 된다. 범죄사실의 입증은 피고인의 자백으로 확인되는 것이 아니라 수사기관이 적법한 절차를 통해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법원, 수사기관, 언론, 시민들이 모두 심증만으로 피의자와 피고인의 유죄를 확신한다면, 과서 군사독재시절 우리가 충분히 경험했던 것처럼 피의 산물로 얻어낸 피의자와 피고인이 가지는 무죄추정의 권리는 종이위에서만 존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석배(법과대학) 교수
최형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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