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기자석 - 오랜 친구 같은 구성원들을 위해
주간기자석 - 오랜 친구 같은 구성원들을 위해
  • 최형균
  • 승인 2013.10.02 18:48
  • 호수 1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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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것 같지 않던 기나긴 추석연휴가 지나고, 믿기지 않을 만큼 한 주가 빨리 지나갔다.
더불어서 한 주전엔 믿지 않았건만, 여전히 원고를 부여 쥔 여느 때와 같은 주말의 하루.
인천에 사는 친구가 놀러온다고 전화를 했다. 알았다고 전했지만 그 친구가 처한 상황이 생각나면서 반가움보다는 꺼림칙한 마음이 들었다. 직장에서 겪은 열 받는 일과 잠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평상시에 전화로 매일 듣는 입장에서, 공연히 긴 시간 들여서 피곤함만 더해서 가는 건 아닐까.
내 할 일이 생각에 더해지며 입속이 씁쓸해지기까지 했다.
이런저런 생각 속, 역 앞에서 기다리는데, 뜻밖의 얼굴이 더해져 왔다. 고등학교 이후로 간간이 연락만 하다가 입대 이후에는 연락이 끊긴 친구. 이전까지의 잡다했던 생각이 반가운 마음에 모두 사라졌다.
처음 신문사에 들어오면서 ‘학교와 학생들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기사를 쓰고 싶다’ 는 열정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끔씩 의문이 든다. ‘기사를 써서 나에게 남는 것은 무엇이며 어떤 것들이 변화할까?’,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일까?’와 같은 생각들이 기사를 쓴 뒤에 항상 남는다.
그러면서 다음 기사에 대한 걱정이 더해지며 혼란스러운 상태가 지속된다.
하지만 도서관 가판대에서 ‘단대신문’을 보는 이들과 지인들이 ‘이번 신문도 볼거리가 많다’고 해줄 때면 혼잡한 생각들이 다시금 정렬된다.
혹자는 많은 학생들이 보지도 않는 학내신문을 뭣하러 힘들여 만드느냐고 말하며, 차라리 그 시간에 영어 한 자를 더 보라는 말도 한다.
스마트폰이 확산되면서 일간지들도 구독자가 줄어들어 활자매체가 위기를 맞는 상황에서 맞는 말일수도 있다.
하지만 전자로 이뤄진 무감정한 글자가 아닌 지면에 한자 한자 정성들여 새겨진, 활자매체만이 가진 힘을 믿는다. 그런 감정이 섞인 글자로 이뤄진 신문은 분명 학생들은 물론이고 교직원들에게도 무언가를 전달할 수 있다. 마치 오랜 친구와의 뜻밖의 재회처럼. 소수이긴 하지만 이런 상호간에 교감이 섞인 신문 한면을 기다리는 독자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걸 믿고 남들이 보기에 어쩌면 미련한 짓을 힘닿는데 까지 해보고 싶다.
학교 구성원간 대화에 도움을 주는 매개체로 모두에게 변화를 주고, 서로의 거리를 좁혀주는 힘이 신문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친구란 두 신체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라고 했다. 학교와 학생이 지금은 어색한 친구일 수 있다. 하지만 학내 신문으로 하나의 영혼으로 결합할 수 있는 오랜 친구사이가 될 수 있길 바란다.

최형균 기자 capcomx6@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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